똥손의 위대한 도전
내가 손으로 하는 유일한 일은 타이핑이다. 손가락을 써서 무언가 만들고 생산하는 모든 것들을 싫어한다. 그리는 것보다는 보는 게, 연주하는 것보다는 듣는 게, 요리를 하는 것보다 누가 해준 맛없는 요리를 웃으며 먹는 게 더 좋다. 뇌, 눈, 귀, 입, 그리고 타이핑 치는 손가락 정도가 내 몸의 에너지 9할을 쓴다. 손재주 없는 '똥손의 인생'은 그렇게 단조로웠다. 그런 손이 감히 꿈을 꾸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드로잉'에 한번 도전해 보자고.
건축을 좋아해서였다. 정확히는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 세계의 도시들에 건축답사도 많이 갔다. 건축학도는 아니지만 그것의 철학적 미학적 매력에 오랫동안 빠져있었다. 그리고 작은 소망이 있었다. 건축물을 보러 가서, 감상하고 사진 찍고, 그곳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내가 찍은 건축물의 사진을 열고, 직접 그려보고 싶다. 하지만 똥손이라 안되지.라고 시작조차 안 했던 꿈.
'시한부 제주인'으로 사는 것에 적응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언제까지 제주에 살지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다시 생각하니 '언제까지 제주에 살지 몰라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내 나라 말을 쓸 수 있을 때,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워보자.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은 어느 날이었다.
동네 산책을 하는데 초록색 우산을 쓴 것 같은 예쁜 작업실이 눈에 띄었다. 아트서점이었다. 역시. 하고 걸어가려는데 시선에 꽂히는 단어, '아트 클래스'. 드로잉 수채화 페인팅. 홀리듯 초록 우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기....혹시....여기서....드로잉....그런데....제가....심각한....똥손인데....혹시...가능 할....
"아아 그럼요 그럼요! 상관없습니다. 제가 사람 만들어 드리면 되죠" (라고 정말로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고, 쌤의 캐릭터를 알게 되어서 그렇게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눈이 크고, 몸도 크고, 긴 머리에, 문신도 빡빡, 목소리도 상남자인, 누가 봐도 나 예술인이요, 하는 화가이자 아트서점 주인이자 드로잉 선생님. 마치 걷지 못하는 자에게 '내가 너를 일어서게 하리니' 하며 머리에 손을 얹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시, 홀리듯 카드를 내밀었다. 일 년 전, 봄이 막 시작되던 3월.
자, 일직선부터 그려 봅시다. 바른 선부터 잘 그려야죠. 건축물을 그리신다니 구도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소실점을 표현하는 방법은 아십니까. 내가 상상했던 첫 시간의 대화였다. 그런데.
그리실 사진 자료 가져오셨죠?
네...이건데요...
그럼 이제 그리세요.
네? 어디서부터 어떻게요??
그냥 그려보세요.
요이땅.도 아니고. 그냥 달리라니요. 드로잉에는 기본자세나 동작 같은 게 없습니까. 그냥 그릴 수 있으면 수업은 왜 왔겠습니까 화가님?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더 당황스러운 것은, 모두가 그렇게 '그냥 그리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거였다. 수강생들은 자신들의 사진을 꺼내서 묵묵히 그렸다. 눈치를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나도 '그냥 그리기'를 시작했다. 어후, 눈 뜨고는 못 볼 똥손의 선들이 제멋대로 판을 쳤다. (뇌는 그렇게 지시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랬다. 망쳤다. 첫날부터. 아니 근데 무슨 수로 안 망쳐? 어른 인생에 그림도 처음인데, 와서 뭘 배운 것도 아닌데?! 아니 일자 선도 일자로 안된다고요. 이러려면 내가 수업은 왜 왔습니까?
내 못생긴 그림에 화가 났다. 똥손의 바닥이 기어코 드러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희열이 조금 샘솟는 걸 느꼈다. 어라, 그래도 완성은 했네? 그지같지만 뭔가 그리긴 했네? 이제 진짜 시작은 한 거네?
어떻게 그리라고 가르쳐 주는 수업이 아닙니다. 그리는 방법엔 정답도 없고,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그리고, 또 그려보고, 그리는 거 옆에서 보고, 또 그리면 늡니다. 누가 그린 작품 그저 따라 그리게 하는 수업은 하지 않습니다.
쌤이 일을 하는 것도 같고 안 하는 것도 같지만, 묘하게 설득되는 논리였다. 참 묘한 수업일세. 펜이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펜을 들게 해주는 수업. 그렇게 묘한 수업을 일 년째. 단호박 같은 화가쌤은 여전하고 똥손도 여전하지만, 내 드로잉도 아주 조금씩 변해갔다.
쌤의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 학원을 쉬는 동안, 내 드로잉은 일주년을 맞았다. 여전히 첫 선은 어렵고, 직선은 휘며, 곡선은 춤을 추고, 명암은 제각각, 마무리는 엉성하다. 지금도 한 시간을 끙끙대며 건물을 완성하면 '수정봇' 쌤이 명암과 마무리 터치를 도와준다.
펜을 잡고 요이땅 해서 마음껏 달리지는 못해도, '내가 너를 일어서게 하리니'는 실현된 셈이다. 일어는 섰으니까. 어떻게 걷고 달릴지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직선과 곡선은 이렇게 그리시고, 건물 구조는 저렇게 하시고, 나무는 요렇게 표현하세요' 같은 수업을 왜 하지 않으셨는지도 이제 알겠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보이고 싶은 것을 그리는 겁니다', '선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면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그림의 정리는 선이 아니라 톤으로 해보세요' '좀 더 간결하고 느낌 있는 선으로 갑시다' 일 년째 듣고 있는 말이고, 일 년째 손이 안 듣는 말이다.
코로나 걱정 없이 여행하며 건축답사를 갈 수 있는 날을, 그 어느 때보다 고대한다. 어느 미술관 옆 카페에 앉아, 노트에 혹은 냅킨에 방금 본 것을 그리는 날을 상상한다. 해를 보며 명암을 표현하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간결하고 느낌있게, 톤으로 정리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그런 날에,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캔북스의 화가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제주에 살지 몰라서' 나는 계속 드로잉을 배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