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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20. 2016

[님포매니악]

[Nymphomaniac: Vol.1, II]

이란 감독 아스가 파하디는 말했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평론가 이동진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극장을 나설 때 진정으로 시작되는 영화가 진짜 영화다"


분명한건, 영화가 끝나고서야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는 거다.

내겐 이 영화가 그랬다.

이런 소재의 영화는 원래 내 취향이 아니다. 

이건 철저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단순한 색정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건, 예견했고, 역시 그랬다.

사람들이 Volume 1이 더 재밌었다고 말하는건, 아마도 신선함 때문이었을거다 .

'색정광'이라는 소재에 대한 신선함,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어린역을 맡은 '스테이시 마틴'의 신선함. 

(그녀는 이쁘고 과감하고 차갑다. 이 시대에 맞는 시니컬 섹시다)

Volume 2에서 모든 이야기의 서사는 넓어지고 완성되고, 전복된다.

2편을 안보면 이 영화 전체를 안본거나 다름없다.


영화를 구성하는 큰 축은 Joe의 색정광 일대기. 

그리고 또 하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해석하는 '셀리그먼'이라는 남자의 축이다.

그 둘은 서로 반대되는 두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 감독이 그렇게 이야기를 끝낼 위인은 아니지만) 


그 둘의 세계가 너무나 방대한 지식, 혹은 방대한 성욕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흥미롭다가, 입이 떡 벌어지다가, 심지어 어지러움까지 느꼈다.

그래, 이 영화는 나같은 평민 언저리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장장 4시간 동안, 그 둘의 대화를 '얼빠진 3인칭 작가 시점'으로 관람하다가 

(뒤통수를 맞고) 멍하게 마감하고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영화를,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세계를, 감독의 메시지를, 그제서야 생각해보기로 했다.

정말로 내게는, 영화가 끝나고서야 영화가 시작됐다.


내 주위에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뭔가 대화를 하고싶은데 막혔다.

평론가들은 감독의 머리를 스캔했(다고 생각하)는지 

'그건 그런 뜻이야'라고들 써놓았지만 충분하지 않았고, 

블로거들은 '그런 뜻이야'를 복사하거나 그냥 '생각보다 하나도 안 야해요'로 귀결시켰다.

내 주위의 누군가가 파일로만 갖고 아직 안보고있다면, 꼭 봐주길 권한다.


P.S. 다양한 포비아 치료법중에 '장시간 노출법'이라는게 있다.

예컨대, 새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새 떼 속에 있는 경험을 하게 한다 . 

엄청난 새 떼를 겪고나면, 작은 새 한마리는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는 식의.


영화에서 엄청난 양의 성기노출 폭격을 맞았더니 정신이 어지럽다가 4시간 후, 마침내 덤덤해졌다.

야동이나 포르노에 매우 친숙치 못한 나를, 라감독님이 일정부분 치료해주었다고 볼 수 있겠다.

역시 거장 감독님이시다.



[Nymphomaniac: Vol.1, II] - Lars Von Trier 

영화가 끝나고 다시 시작된 영화의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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