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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30. 2016

상하이에서까지 '갑질'을 당하다니

Shanghai #65

때때로 네이밍을 한다.

때때로 슬로건을 쓰고,
아이데이션의 양은 줄었지만
때때로 뇌에서 즙을 짜내고,
종종 자료 서치를 한다.


나는 이제 '매일형' 카피라이터는 아니다.
'가끔형' 카피라이터다.


그리고 어제는 내가 네이밍한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대망의 오픈날이었다.


프리랜서는 어차피 네이밍 완료와 함께 업무가 끝나므로,
그 브랜드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대금을 지급받는다. 
업계의 원칙이 그렇다.
광고 캠페인도 경쟁피티라면 성공 여부에 따라서 50%만 지급되기도 하지만,
실행 프로젝트일 때는 그냥 백 퍼센트를 받는다.
더군다나 네이밍 같은 '외주 비용'은 실비 정산이다.


그러니까 지금쯤은 '아시아에서 매출이 가장 크다는 

외국계 마트 안에 입점한 그 새로운 아이스크림 가게'의 

이름을 지은 대가가 내 계좌에 입금이 돼 있어야 맞다.


그러나 나는 속았다.
나에게 일을 의뢰한 갑님은 구두로 계약을 했고,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그를 믿었고,
열심히 일했고,
상표등록까지 마쳤으나, 
가게가 오픈하는 동안 
계약서 한 장 남지 않고
내 노력의 대가는 잊혀졌다.


갑님에게 매일같이 항변을 했다.
이런 식으로는 다시는 일하지 않겠다고.
갑님은 음흉한 웃음을 날렸다.
언젠간 드린다니까요?


갑님의 멱살을 잡지는 않았다.
돈을 받고 나서 치러야 할 일이다.


그런데 갑님은 뻔뻔하게도 또 다른 일을 의뢰했다.
이번엔 '브랜딩 작업을 위한 디테일하고도 퀄리티 있는 자료 찾기'.
하. 자료 찾기라면 내가 또 한 서치 하는 터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약 100만원 정도의 알바비를 제안했다.
콜.


하루만 바짝 하면 될 일인데 백만원이 어디야.
나는 원래 하던 알바 가게에 앉아, 다른 알바에 집중했다.
미안하지만 어차피 손님이 하루에 한두명도 되지 않는다.


간만에 '김부장'으로 변신, 갑님의 수준에 딱 맞는 PPT를 완성했다.
PPT 보셨어요? 어때요.
잘했어요. 이거면 충분하겠네요.
갑님은 만족했다. 갑님의 1차 피티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대금지급하셔야죠.
네네. 압니다.
지금 해주시죠.
네네 드린다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김상중 톤)
피드백을 보고 한 번 더 해주셔야 할 수도 있어요.
네? 피티 끝난 거 아니었나요
그렇긴 한데, 한번 더 부탁드리려고요. 

일단 알바비 50%만 먼저 지급하겠습니다.
네? 왜죠? 뭐죠? (뭐야 이 사람. 양X치 아냐)


그는 정말 50%의 대금만을 내게 보냈다.
빡이 쳤지만 일단 돈이 들어오니 기분이 50%쯤 풀렸다.
이것도 100%가 다 지급되면 응당의 복수를 할 것이다.


주말에 갑님과, 갑님의 옛 동료 그리고 나, 셋이서 커피를 마셨다.
나는 갑님의 옛 동료이자 내 친구인 그녀에게 이 정황을 고발했다.
저 놈이 그런 놈이야.


뭐야 정말 그랬어?
어 진짜로 반만 줬어. 
옆자리 갑님은 팔짱을 끼고 또 뻔뻔하게 웃었다.
아 참, 준다니까.


이렇게 양X치 짓 하면 다시는 일 안합니다!
(앞으로 양실장이라고 부를까 보다.)


하지만 일을 또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갑님이 나 아닌 다른 카피라이터를 찾는다면
그것 또한 빡이 칠 일이다.


아 얄미운 갑.
버리지도 못하는 갑.
지금도 소파에서 쌕쌕자는 갑.
집안에서는 내가 갑인데
일할 때는 양X치 갑으로 변하는 갑. 

쌩판 모르는 중국인과의 꽌시는 잘 지키면서

8년째 같이 사는 을과의 꽌시는 개판인 갑.


이걸 어디다 고발해야 하나. 어머니한테 고자질 해야하나.

계속 이런 식으로 대금지급 안 하면 
입 벌리고 잘 때 코랑 입이랑 

동시에 막아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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