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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워터플랜트
Jan 22. 2024
매일 가슴이 덜컹 인다(feat. 재직증명서)
망해가는 회사라고 한들 일거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놀던 사람은 계속 놀아
기울어가는 회사
의 경사도에 기여를 해야겠지만 일개미들의 하루는 여전히 똑같다.
출근해 텀블러를 씻고 책상을 정리한 뒤 앉아 메일을 확인하고 틈틈이 휴대폰을 보고 사내 메신저는 위험하니 카카오톡을 통해 속없이 낄낄거린다.
회사가 이렇게 되어버리고 동료들과의 대화 중에 몇 가지 습관이 되어버린 것들이 있는데 ‘다 부질없다’와 ‘어서 날
잘라라’였다.
대화를 할 때는 웃으며 맞장구치고 고개도 끄덕이지만 막상 대화창을 덮고 나면
오래 우린 차
찌꺼기처럼
마음이
가라앉는다.
희망이 없는 생활이라는 것이 이토록이나 무의미해진다. 잘 쓰인 보고서에 칭찬을 받았다는 말에 잘했다, 잘됐다는 말조차 인색해지는 조직이 되어 버렸다.
예산이 없어 기본급 외 모든 것이 삭감되었다.
직책수당도 사라졌지만 그래도 본부장이고 그래도 팀장이라 걸어 나가야 한다. 초근수당도 없어졌지만 직원들은 저녁시간을 훌쩍 넘기더라도 자신의 앞에 놓은 것들을 처리해야만 한다.
오늘 오후, 회의용 자료를 만들어 놓고 메일을 보내려는데 옆자리 동료가 재직증명서는 어떻게 떼는지 알고 있느냐 물었다. 시스템에서 개인적으로 뗄 수 있지 않느냐 답했더니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다며 시스템을 관리하는 부서에 전화를 넣는다.
재직증명서라니
.
이직 전에 떼는 필수서류가 아닌가.
그때부터 마음이
덜컹 인다.
몇 회차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희망퇴직이라지만 이제 일 회 차인데 모집인원이 백 명을 넘는다.
내가 오십육 번이 될 수도 칠십 팔 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잃어야 할 동료가 오십도 육십도 구십도 넘는다는 말이다.
그중에는 나와 매일 점심을 함께하는 동료가 있을지도, 가끔 티타임을 함께하는 동료가 있을지도, 내가 눈을 흘기며 맘 속으로 미워라 하는 동료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떠나야 할 사람이라면 그래도 순서가 있었으면 좋겠고 가까운 이별은 나와 친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굳어지려는 얼굴을 애써 펴고
‘재직증명서는 왜? 나 두고 어디 가는데?’
라고 물었더니 웃으며
‘다른 데 가야죠’
라며 눙을 친다.
인생이 달린 일인데 나 슬프다고 가지 말라고도 못하는 현실이라 나도 데려가야지 답하고 말았지만 마음이 잔뜩 불안했다.
나를 두고 가지 마, 나를 두고 어디가.
어차피 닫을 회사라면 그때까지는 같이 하자고 말하고 싶었으나 사실은 매일 하는 입버릇처럼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몇 번 정도 겪고 나면 익숙해질까.
익숙해질 성싶지 않으면 몇 번의 이별 후에 내가 먼저 떠나야 할까.
투닥투닥 키보드만 두드리는데 웃으며 다가온 동료가 어깨를 짚으며 웃는다.
"육아휴직 사후 지급금 신청 때문에요, 서류 제출하라고 연락이 왔기에"
나의 불안을 모두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때의 심정을 다행이라 표현하는 것조차 죄스럽고 미안했으나 그럼에도 기뻤다.
하나 둘 비어 가는 자리에 먼지가 앉은 컴퓨터와 전화기가 늘어가는데 이 난파선을 떠나 하선하는 동료의 행운에 기뻐할 아량이 없다니.
한심하고 미안하고 머쓱했다.
그럼에도 기쁨이 너무 커 동료의 비어있는 텀블러에 따뜻한 커피라도 잔뜩 담아주고 싶었다. 빙빙 도는 의자를 붙잡아 엉거주춤 앉으며 생각했다.
나는
아직은 당신과 이별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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