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 환급금 지급 안내]
이것은 분명한 피싱이다. 불과 며칠 전에도 ‘6월 거래명세서’라는 스팸을 받고 주저 없이 열어 타박받았던 터라 이번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피싱이 아니라면 내가 받을 국세 환급금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혹시나 싶어 국세청 홈페이지를 들어가고는 눈이 둥그레졌다.
피싱이 아니라니? 스팸이 아니라니?!
뜬금없이 꽂힌 12,570원! 종합소득세 환급금이란다.
“대체 이게 뭐야”
혼란스러운 얼굴을 돌려 동료에게 묻기 직전, 이 돈의 정체가 떠올랐다.
지난 11월의 알바였다.
다이소에 납품되는 디퓨저 공장에서 보낸 6일, 사회 초년생처럼 쭈뼛대며 라인을 타고 있는 것이 나인지 디퓨저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을 놓았던 날들이었다. 그 며칠의 기억이 이 약소한 환급금과 함께 와르르 되살아났다.
아무리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지만 그때의 나는 그 세상의 진리를 온몸으로 넘치게 배우는 중이었다.
“디퓨저 공장이에요. 단순 반복 작업이고요. 자차 이용하시면 오천 원 더 지급됩니다.”
업체와 지원자를 연결해 주는 매니저는 간결하게 설명했다. 세금을 제하고 나면 팔만 원도 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한 푼이 귀했다. 그렇게 무급인 회사 직원 셋이 작당 모의처럼 공장으로 향했다.
첫날 아침, 우리는 누군가 신다 벗어놓은 것이 분명한 얼룩진 슬리퍼를 나눠 신고 작업 장갑을 낀 채로 업무 배정을 받기 위해 반장의 맹렬한 눈길 앞에 줄을 섰다. 층고가 높은 실내에는 공장 특유의 서늘함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향들로 가득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디퓨저의 ‘겉뚜껑 닫기’였다. 앞에 선 두 사람은 속 뚜껑을 끼우고 병의 라벨이 정확히 정면을 향하도록 돌리는 작업을 맡았다. 이제 갓 수능을 마치고 온 듯한 학생들이었다. 서로의 대화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젊은이들 말이다.
“어제 너 걔 만난 거야? 왜 말을 안 해?”
“너는, 너는, 너도 말 안 했잖아.”
“웃기네, 진짜.”
이어폰을 가지고 왔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쫄보 알바생에게 그런 담력이 있을 리가 없다. 대화의 심도가 깊어질수록 용기의 라벨은 속 뚜껑조차 닫히지 않은 채로 밀려왔다.
결국 나는 속 뚜껑을 끼우고 라벨이 정면이 향하도록 돌린 후 겉뚜껑을 올리는 업무를 맡았다. 그동안 죽도록 바쁘다며 투덜거렸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작업되지 않은 병을 상자에 담을 수는 없었다. 속 뚜껑을 닫지 않으면 내용물이 흐르고 용기가 깨지기라도 하면 혼이 날 터였다. 나는 점점 조립 공정의 연장선이 되어갔다. 머리는 정지된 채 두 손만이 움직였다. 생각을 하면 손이 늦고, 늦으면 용기가 쌓였다.
디퓨저의 향은 ‘화이트 머스크’라고 했었다. 포근하고 달콤했을지도 모를 향은 어느 순간부터 내 콧속에 하나의 방을 만들고 눌러앉아 모든 냄새를 차단했다.
지옥 같던 오전을 보내고 옆 라인에서 일하던 회사 동료들과 한식뷔페(함바집)로 향했다. 과장이라는 직함의 젊은 직원이 나눠준 식권을 귀하게 든 채였다.
한 명은 유리병을 햇볕에 비춰 불량을 검수했고, 다른 한 명은 완성된 디퓨저를 개수대로 상자에 넣고 테이프를 붙였다. 서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둘러볼 틈도 없었다.
주변 공장들이 함께 이용하고 있는 식당이었는지 사람이 많았다. 오늘의 반찬은 코다리조림, 콩나물무침, 김부각, 된장국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김부각을 다섯 개나 집었다.
“김부각에 진심이야?”
동료가 힐끔 웃으며 물었다.
“냄새는 냄새로 덮어야 해.”
우리는 각자의 팔을 킁킁댔다. 향료가 피부에 배인 느낌이었다. 밥을 먹는 내내 오전에 맡은 작업에 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오갔다. 물티슈로 아무리 손을 닦아도 장갑 안쪽까지 스며든 향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후가 시작되자 고될 것을 예감한 뒷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자마자 피로가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이모뻘은 될 것이 분명한 어른이 학생들이 꾸짖음을 당하길 기다리며 수백 개의 병을 닫아댄 하루였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 익숙한 된장찌개의 냄새가 났다.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어? 밥은?”
“안 먹었지, 그거 얼마 번다고 밥값을 날려.”
엄마가 돈 귀한 줄 이제 알겠냐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그래, 요즘엔 다 그렇게들 산다. 일은 할 만하든?”
나이 들어 새로운 업무에 던져진 자식이 안쓰러운지 눈썹이 슬쩍 내려갔다.
“디퓨저 알죠? 나 오늘 하루 종일 그거 뚜껑 닫았어.”
어깨가 얼마나 아프더냐며 엄마는 국자로 찌개 국물을 한 숟갈 떠 내밀었다.
“그래도 너, 손이 야무져서 잘할 거야.”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방으로 들어와 가만히 손을 내려보았다. 화이트 머스크랬나. 낮 동안 정신없이 덮어두었던 감각이 겨우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고단한 하루가 6일이 지속되었다.
작업 라인을 떠올릴수록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정신없던 컨베이어 벨트, 커다란 고함소리, 눈앞으로 밀려오는 수십 개의 용기들. 코끝에 붙은 향료, 라인이 시작되는 저 끝을 건너보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코앞만 쳐다봐야 했던 하루.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던 어깨와 지친 얼굴들.
그 잊고 지낸 날들의 흔적이 바로 12,570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