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이번에 엄마 생신 선물로 안경 새로 맞춰드리는 건 어때?”
남동생의 말에 순식간에 눈빛이 흔들린다. 흔들린 게 눈빛뿐이었을까. 통장 잔고를 떠올리는 머릿속, 자존심, 입꼬리가 소리 없이 뒹굴었다.
무급휴직 10개월 차.
어디 자랑스레 내밀만한 금액이 쌓여갔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달 들어오던 통장의 입금이 멈추고, 입금내역이 없으니 은행에서 받을 수 있던 쥐꼬리만 한 혜택마저 모두 사라졌다. 풍차 돌리기랍시고 매달 들어놓았던 예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던 것도 이제 무급 일 년을 맞아 바닥이 날 예정이었다.
“안경.. 나쁘지 않지. 작년에 해드리려다가 못 해 드렸잖아.”
태연한 척 말했지만 이미 속으로는 '독보적 가격 역주행' '여름 쿨 엄청난 가격 할인행사'로 시작되었던 휴대폰 광고 문자를 뒤적이고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보니까 엄마 자꾸 눈을 찡그리시더라고. 콧등에 눌린 자국도 그렇고,
이번엔 좀 좋은 걸로 해드리자. 가벼운 걸로.”
맞는 말이다.
안경의 수명은 알지 못하지만 아무리 길게 봐준다 해도 엄마의 안경은 이미 한계를 다해가는 것이 분명했다.
자꾸 흘러내리는 탓에 귀받침에 끼워 넣은 실리콘과 햇빛을 받으면 무지개가 생기는 렌즈, 시력과 맞지 않는 탓에 글씨를 읽지 못하는 물건은 이미 안경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래, 좋은 걸로 해드리자.”
'무이자 3개월? 잠깐, 할부로 한다고 내가 내는 게 가능한가? 그럼 가족식사는?'
“요즘 괜찮은 거 많이 나왔더라. 반반 하자."
동생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방을 나섰다. 항상 부모님의 선물을 고르는 것도, 예상보다 비싼 것을 택해서 동생을 조금쯤 난감하게 하던 것도 나였는데 뒤바뀐 위치에 서보니 동생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겠구나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누나다.
비록 한 살뿐일지라도 손 위라는 자존심이란 게 있어서
이번은 내 사정이 좀 그러하니 네가 안경을 하고 내가 식사비용을 부담할까 따위의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사두었던 주식 중 빨간 불이 들어온 하나를 팔면 그럭저럭 충당이 될 듯싶었다.
어떻게든 낼 수야 있었다.
해야만 했다.
엄마가 TV 화면을 보다 눈을 찌푸리고, 나를 볼 때 안경을 올려 쓰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라도.
며칠 뒤, 엄마를 모시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광고 문자를 보내오던 동네 안경점으로 향했다. 건물 외벽에 전단지를 빼곡하게 붙여놨기에 장사가 어지간히 안되나 보다며 들어갔는데 웬걸, 안경 반, 손님 반이다.
“좀 더 써도 된다니까. 아직 잘만 보이는데 뭐.”
“엄마, 그건 잘 보이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데 익숙해진 거예요.”
엄마는 몇 번의 손사래 끝에 결국 거울 앞에 서서 안경 몇 개를 걸쳐보기 시작했다.
“이건 테가 너무 두꺼워서 무거워"
“무거워봤자 얼마나 무겁다고 그래. 얇은 뿔테가 어려 보인다니까 그러시네."
엄마의 얼굴형과 어울릴만한 것들을 집어 건네주면서도 슬그머니 가격표를 들춰보기 바빴다.
주머니가 비었다고 눈이 낮아지는 건 아니라 고르는 족족 직원의 입에서 '그건 일본 메이커인데' '아 그게 요새 아주 잘 나가는'과 같은 찬탄을 이끌어내는 것이 뿌듯할 지경이다.
안경테만 36만 원, 이 기간만 특별히, 단골고객인 내게만 적용되는 50프로 할인가면 18만 원.
시야가 넓게 잡히는 다초점 렌즈까지 하면 총 38만 원에 반반 부담한다고 하면 19만 원이다.
얼추 각오했던 것과 비슷한 금액이었다.
“이걸로 하자. 이건 가볍기도 하고 테가 얄상해서 예쁘네."
엄마가 선택을 마치자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에누리를 떼기 위한 흥정을 시작했다. '저도 눈이 나빠서 곧 안경을 맞추러 올 예정이고'까지 나오자 사장님은 웃으며 삼만 원을 더 깎아주었다.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결제를 끝낸다.
“일주일 뒤에 문자 드릴 테니 찾으러 오세요."
엄마는 신이 난 눈치였다. 시력검사를 해보니 두 단계나 차이가 나더라며 마침 안경을 맞춰야 하나 싶었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좀 전까지만 해도 쓸만하다던 안경은 뉘 집 안경이더라.
"불편하셨음 진작 말씀하시지."
시야가 환해질 생각에 들뜬 엄마를 보며 미안함에 웅얼거린다. 그리고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경은 내가 할게, 네가 밥이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