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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터플랜트 Sep 30. 2024

십오 년 만에 이력서를 씁니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시험을 보고 취업을 하게 되는 걸까.


 십여 년 만에 채용공고를 뒤적이자니 마치 불을 처음 발견한 신인류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세월에 나이를 맡겨둔 사이 세상은 너무 변해버렸다. 알지 못하는 채용 사이트가 분야별로 늘어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그사이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몸값을 높이는 동안 나는 그저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할 것 같던 회사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상위기관에서 빠르게 이름이 삭제되고 바로 당일 저녁에 넷상을 포함하여 모든 정보가 수정되었다. 작은 회사였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곳이었는데 모두가 너희가 문을 닫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 밖으로 내모는 기분이었다.

     

 25일이었던 급여 날이 지나고 돈 만 원이 행여 덜 들어올까 극성스럽게 난리 치던 직원들조차 급여통장에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것을 알고도 못 본 듯 침묵했다. 그동안 직군과 직급을 나누어 치열하게 싸우던 것이 무색했다.


 나는 쥐꼬리를 받지만, 대출금을 내지 못하고 아이들 교육비를 지급하지 못할 높은 직급의 직원이 걱정되었다. 동료들은 너나 걱정하라며 등짝을 내려치는 시늉을 했다.      


띠링 띠링

 온종일 요란하게 빠져나가는 케이블 요금, 통신비, 보험료 등이 가슴을 쿵 쿵 때려댔지만, 집도 사지 못한 처지라 대출금이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엄마의 통장으로 매달 보내는 소소한 용돈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굼벅굼벅 굴러가던 머리로 연체되면 안 되는 것들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오만 원, 십만 원, 칠만 원 등등을 나열하고 나니 고정적으로 나가는 것만 백만 원을 채웠다.      


“A씨는 몸이라 그래도 다행이겠다. 애들 교육비는 안 나가도 되잖아.”    

 

 내게는 다행이지만 부모님께도 다행일까. 나이 든 자녀가 가족도 없는 몸인데 직장까지 잃었다. 있지도 않은 손주들의 교육비가 나가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심할 부모가 있을까.      


 엄마의 통장으로 돈을 보내고 나니 바로 카톡이 왔다.   

   

[월급 나왔어?]     


[ㅇㅇ, 이번 달은 나왔어요]    

 

 한 달 치의 걱정을 미뤄놓을 수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엄마는 답이 없었다. 이 작은 회사가 뉴스를 제법 타기도 했기에 전 직원 급여 지연이라는 기사를 이미 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급여조차 지연된 회사의 업무량은 본래 있던 것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앉아선 채용공고를 뒤적이거나 자기소개서를 쓰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뒤편에 앉은 직원에게 부여된 업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자판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업무를 하다 보면 그 소리가 엄청나게 얄미웠다.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누구는 업무를 해야 하고 누구는 사무실을 스터디카페처럼 활용하고 있는 게 맞나.


 상황이 궁핍하다 보니 남아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엄청나게 안쓰러워하거나 얄미워하거나 그 어딘가를 바쁘게 왕복해야만 했다.      


 채용공고조차 쉬어간 한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자 사이트에는 공고가 몇 개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재직증명서인 서류부터 떼고 이력서를 쓰고 응시하고, 그리고는 기다림의 시간이려나.      


 모든 것이 불안해졌다. 마이너스 통장부터 뚫어놓으라는 동료들의 말을 듣는 것이 먼저인지 자격증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여론처럼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먼저일지, 적금을 털어 텅 빈 통장부터 채워놓는 것이 먼저인지.      


 한숨을 쉬며 이력서를 넣을만한 곳을 둘러보는데 옆에 있던 직원이 요즘은 화상 면접을 보는 곳도 있어서 제시간에 카메라가 켜지지 않으면 그것도 탈락 사유더라며 겁을 줬다.      


“1차 서류탈락이 더 걱정인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갈 재주나 있을까.”     


“하긴 그래요.”     


 아니라고 하지 않는 직원을 흘겨보며 창문 밖으로 건너보는 풍경은 아직은 여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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