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쌓여있던 재물이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일꾼들 품삯은 매달 줘야 하니 금방 동이 나버렸다. 컴퓨터에 깔려있던 프로그램들이 중단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압축 프로그램조차 없어진 탓에 우왕좌왕 무료 제품을 찾아 깔아야 했고 대체된 것들이 손에 익지 않아 단순한 작업조차 버벅거려야 했다.
이어 임대한 건물의 시설관리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어졌다. 공용공간인 복도와 화장실의 청소만 맡아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인데도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쓰레기 하나를 버리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직원들의 어깨가 한껏 쭈굴쭈굴해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후에는 출장비가 절반으로 삭감되었다고 공지가 뜨고 그다음 달에는 건당 만원이라는 책정 금액이 안내되었으며 마침내는 한 푼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세종시까지 정기 출입을 해야 하는 직원들은 사비를 충당해서 몸도 마음도 지갑도 지친 길을 오갔다.
그리고 6월의 어느 날, 그룹웨어 게시판에 급여 이연지급 동의서가 올라왔다. 경영진과 해당 부서에서 얼마나 고심하고 얼마나 고생해서 썼을지 예상이 가는 장문의 글이었다. 문제는 이미 지친 직원들에게 문서 뒤에 있을 동료들을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전쟁이었다.
이연지급 동의서에는 현재 가진 예산이 극히 적어 지급할 수 있는 급여가 한정되어 있으니 일부 금액은 회사가 정상화되는 어느 날 지급하겠노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네 번의 희망퇴직을 지나 너덜너덜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예상했으며 지금 당장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돈주머니를 계산하느라 전투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높은 직급과 낮은 직급, 높은 급여와 낮은 급여의 사람들, 그리고 직군별로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나가야 할 지출이 많음을 주장했고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은 더 쪼갤 수조차 없는 엽전 한 푼 만큼 적은 급여 주머니를 내보였다.
회사가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되자 사람들은 더 잃을 것이 없단 듯이 본성을 드러내며 싸웠다.
나 또한 그랬다.
“본인들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부양할 가족도 많아서 돈 나갈 곳이 많다는 거야? 없는 사람은 근근이 살아도 될 테니 조금 덜 먹으면서 버텨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들은 가장 매운맛으로 주문한 떡볶이처럼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원래 나라가 망조가 들면 간신들이 설치는 거야. 저런 사람인 줄 몰랐네.”
“난 원래 저 사람 별로긴 했음.”
계산법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연 급여 공지가 퍼센테이지를 바꿔 수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였다. 계산기로 두들기다가 틀리면 온갖 짜증을 내며 엑셀과 급여명세서를 켜야 했다.
6월은 그렇게 모두에게 불신과 상처와 서글픔을 남긴 채로 급여가 뭉텅 깎여나간 첫 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