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아직 망하지 않았고, 망한 건 바로 나였다
회사가 문을 닫기까지에는 정해진 기한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기한이란 것이 너네 이때에는 문을 닫고 모두 나가란 것이 아니라 가치가 떨어졌으니 더는 품 안에 자식일 수 없단 것과 같아서 그 기한이 지나고도 회사는 여전히 문만은 닫지 않았다.
기한은 이미 한 달 여가 지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카드키를 대면 정문을 활짝 열어주는 회사에 출근 중이다.
같이 와플을 먹어주던 동료가 떠나고, 그 업무를 이어받았던 사람조차 떠나고, 이제는 이주에 한 번쯤 딱지 앉은 이별을 반복하면서.
남은 동력을 쓰고 나면 정말 문을 닫고야 말겠지.
그런데 그게 언제일까를 남아있는 모두가 가늠해 보는데 쉽지가 않다.
우물에 물이 얼마나 남았나 싶어 돌멩이를 던져보면 마른 바닥에 탁 하니 떨어져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비척비척 하루씩 살아남는다.
밖에서 보면야 회사 명패 하나겠지만 그 안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천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고, 위기 앞에서야 본성이 보인다고 하루는 남을 밀치고 홀로 살아남기 위한 [부산행]을 찍고 다음날은 [달려라하니]를 그리며 이마에 수건이라도 두를 기합으로 씩씩하게 달린다.
이런 매일의 반복 끝에 망하는 건 과연 회사가 먼저일까 내가 먼저일까 싶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느 해보다 더운 2024년의 6월의 어느 날에도 망해가는 회사에 출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