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사내 복지에 포함되어 있는 심리센터에 상담을 신청했었다. 내게 보장된 복지는 모조리 쓰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호기심이 반반이었다.
아무래도 대면은 부담스러운 감이 있어 등록된 몇 개의 센터 중 하나를 골라 전화 상담으로 예약을 했다.
대체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하나 걱정했던 것에 비해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업무적인 통화와도 별다르지 않았는데 상담사분의 목소리는 높낮이가 있으면서도 편안했다.
“요즘 좀 어떠세요? 저는 오늘 큰맘 먹고 애플망고를 사서 먹었는데 진짜 맛있더라고요.”
지인과 통화하듯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며 상담이 시작되었다. 분명 코끼리 망고라는 것도 있다더라는 얘기를 하고 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근래 내가 가장 불편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크게 불편하다기 보다는요, 제가 요새 정말 화가 많아진 것 같아서요.”
상담사분은 호쾌하게 웃으며 답했다.
"화를 내는 건 지극히 정상이에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거 하나도 없어요."
아니요, 제가 얼마나 화가 많은지 모르셔서 그래요. 라는 말을 눌러 삼켰다.
나는 요새 미친 것 같았다.
미치는 것에도 한계선이 있다면 적어도 팔십 프로는 너끈히 채우지 않았나 싶었다. 털어놓자니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장까지 보여주고 집에 가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하던 경험을 반복할 것 같은 경계심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 그렇게 분노를 많이 느끼세요?"
선생님. 제가 어디라고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분노가 불편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라는 말조차 다시 삼켰다.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났다.
수시로 연착하는 서울행 전동차를 타고 출근할 때는 얘도 밉고, 쟤도 밉고 다 미웠다. 지하철 봉에 몸을 떡하니 기대고 서는 탓에 잡을 곳 하나 없어 휘청일 때도 인파에 밀려 쓰러질 것 같은 사람들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승객을 볼 때도 분노가 치밀었다.
이 정도 매너조차 없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다가도 파출소에 앉아 팀장님, 제가 개인 사정으로 피치 못하게 오전 반차를 내야 할 것 같습니다 고 문자를 보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애써 참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사치고 예쁜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그러려니 넘기던 일들의 타격감이 커졌다. 단순한 대답조차 곱게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상했다고 하지 않을 것도 아니면서 일을 마무리 짓는 순간까지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책과 후회의 반복이었다.
상담사분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예로 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쁨이와 슬픔이, 소심이와 까칠이, 그리고 버럭이조차 각자 필요의 이유가 있으며 분노는 순수한 감정의 표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혹시 근래 들어 특별히 분노가 많아졌다고 여기는 까닭이 있느냐 물었다.
"원래 화가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평화로웠을 시절의 내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회사가 문을 닫는다고 못 박히기 전, 서로 네 탓 내 탓이라며 소리 높이기 전. 야식으로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연애담에 낄낄거리던 동료가 떠나기 전의 나는 어땠더라.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 거예요."
분명한 건 나는 괜찮지 않았다.
상담사분은 토해내고 나면 조금 나아질 거라며 다독였지만 그래서 괜찮아질 거라면 남은 직원들을 회사 앞마당에 모아놓고 통곡하고야 말았겠다.
이미 회사를 떠난 팀장님은 마지막 점심을 함께하며 남은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앞세웠다. 몇 개월 후에 다 같이 문을 닫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수어 번에 걸쳐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남겨진 일들은 결국 버티는 사람의 몫이고 지쳐버린 그 사람이 떠나면 또다시 남은 자가 서너 배의 몫을 떠맡게 되어버린다고.
힘들다고 마음을 토로할 사람조차 없는 빈 회사에서.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는다 한들 나는 과연 멀쩡한 머리와 온전한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화를 어떻게 잘 표출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감정에는 잘못이 없어요. 분노라는 감정을 표출하는 데 신중함을 기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는 마세요. “
지하철에서 그런 사람을 보거든 우선 화를 내기 전에 자리를 피하거나 그도 여의찮으면 거울을 보란다.
화가 난다고 누굴 때리거나 싸우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내가 울어버리고 말았던 게 문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친 상태로 굳이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네에."
상담사분이 다음 일정을 잡아보자며 말을 이었다. 대면에 비해 전화 상담의 경우 포인트가 많이 들지 않으니 두어 번은 더 만날 수 있겠다고, 그 뒤로도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내년에도 회사를 통해서 상담이 계속 진행될 예정이겠죠?"
"그건 잘 모르겠어요."
될 리가 없겠으나 미리부터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도 삼십여 분간 계속된 위로와 다정이 내게로 쏟아졌다.
도움은 전혀 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분노가 많은 사람이 되었는지,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한 미움에 몸 둘 바를 모르는지 까닭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멀쩡해져야지, 나아져야지.
분노의 다섯 단계가 있다고 했으니 나는 지금 1단계 부정을 지나 2단계 분노를 겪는 중이겠노라 생각했다. 이제 타협과 우울을 무사히 넘기면 마침내 수용하게 되겠지.
그리고 나면 회사가 문을 닫으려나.
무엇이 먼저일지 생각하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상담을 마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아직 분노의 2단계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