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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터플랜트 Jan 25. 2024

그럼에도 와플은 맛있다


점심을 함께 먹는 동료들과는 특별히 약속이 있지 않는 한 도시락을 싸서 출근한다.


뛰어오르는 외식 물가를 감당하기 버겁다 싶었을 때 배달 어플에서 할인이 적용되는 메뉴들로만 주문을 하기 시작했고, 그조차 지겨워져 아예 도시락을 싸 오기로 했다.


정성이 들어간 밑반찬이나 번거롭게 손이 가는 것들을 준비할 수는 없어서 대부분 간편식이긴 하다. 다른 직원이 메뉴를 둘러보고는 유치원생 도시락이냐 놀렸지만 잘 구운 소시지나 돈가스 종류만큼 편하고 맛 좋은 것이 없었다.


막내 동료의 어머니가 언니들이 나이가 좀 있으니 죽순을 좋아할 거라며 챙겨주시려고 하셨다는데


'아니야. 우리 언니들 소시지 좋아해!'


라고 답했대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막내는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셋 중 혼자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기르고 있어 사실상 가장 어른이다. 두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돌보면서도 뚝딱뚝딱 고기도 볶아오거나 생선을 구워오기도 한다.





오늘도 회의용 원형 테이블에 준비해 온 도시락용 김과 너겟, 시판용 묵을 늘어놓고 느릿느릿 점심을 먹으며 높은 난방온도에 하얗게 터버린 피부에 대한 넋두리와 작년 12월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에서 막내의 심장 이상이 발견되어 병가를 써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심장 판막에 이상이 있어서 피가 역류하는 거라는데 큰 병은 아니래요, 그냥 노화되는 과정이라고 하시던데요.”     


“그럼 이제쯤 우리는 피가 밖으로 흐르고 있나?”


가장 어린 막내의 이야기에 동료가 웃으며 대꾸한다. 다 같이 허리를 구부리며 웃었다. 박수도 짝짝 치면서 서맥이나 빈맥 같은 것은 들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십 대처럼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건강검진을 해주려나?"


직원들의 인건비도 모자라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 회사에서 복지비가 배정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매해 초에 복지비를 배정받으면 한 번에 결제하기 부담스러웠던 고가의 제품들을 사거나 이사 등 예정된 이벤트에 돈을 보탰다. 당시에는 큰 금액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으나 곁에 있을 때 귀한 것을 몰랐던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건강검진도 복지에 포함되어 있던 터라 내심 가장 걱정스러웠던 부분이었다. 직원 외 가족이 검진을 받을 때 에도 무료인 건 아니었으나 할인된 가격으로 매해 부모님의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혜택이 없다면 어찌해야 하나.  


회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부모님은 아직 모른다.

동생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타 부서의 언니는 얼마 전에야 간신히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있었다고 했다.


회사가 이토록 어렵고 내가 내 발로 그만두게 될지, 잘리게 될지, 회사가 문을 닫을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주십사고.


떼어지지 않는 입이었지만 매일 바싹바싹 말라가는 딸의 눈치를 보느라 부모님은 영문도 모른 채 힘드셨을 테니 이제는 아셔야 하지 않겠냐 하는데 세 개의 가정 중에 희망적인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좀 억울했다.


내가 비록 유명 프로그램에 나왔던 누군가의 말처럼 넘치는 일인 분의 몫을 다하지는 못했을지라도 회사가 이렇게 되도록 무언가를 크게 잘못한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돌 아이를 키우는 어른막내도, 재치 있고 똑똑한 동료도 절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나조차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부모님이나 동생에게 말을 전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했다.



젓가락이 한껏 느려졌으나 도시락은 깨끗이 비워낸다. 밥 한 톨 남기지 않은 도시락을 차근차근 개어 보자기에 넣고 힘주어 묶으며 말을 던진다.


"오늘 장터 열리는 날 아냐? 우리 와플 먹으러 가자!"


점심값을 아껴 회사 근처 아파트 단지에 요일별로 열리는 장터의 이천 오백 원짜리 와플을 사러 간다.


동료의 표현을 빌자면 입천장이 잔뜩 까지는 맛인 옛날식 와플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춥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으나 아직은 곁인 동료들과 함께 먹는 와플은 그저 달콤하고 맛있었다.


마치 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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