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 휴가 1년 6개월을 겪고도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하다. 이건 자랑할 일이 아니라서였다. 오래된 텀블러처럼 버리기도 애매하고 계속 쓰자니 입구가 조금 찌그러진 상태로 우리는 여전히 출근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주, 숙원을 묵혀두었던 팀장님이 마침내 회사를 떠났다. 오래 버텨낸 사람일수록 퇴사는 조용하다. 인사 메일도 박수도 없었다. 휴업일을 지나 출근해보니 팀장님의 자리는 이미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일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팀장님만 알고 있던 프로세스, 팀장님만 정리해 두었던 업무자료, 팀장님만 가지고 있던 거래처와 같은 것들이 동시에 터졌다. 우리는 갑자기 목적지를 잃은 내비게이션이 된 것처럼 허둥거렸다.
결정적인 순간은 오고야 말았다.
내게 전화를 건 타 본부의 담당자도 얼결에 팀장을 대리해 담당자로 이름을 올린 나조차도 정확한 업무 프로세스를 알지 못한 업무의 마감일이 들이닥쳤다.
낭패였다.
팀장님이 새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쁠 걸 알았다. 아마 지금쯤은 새로운 명함을 받고, 새로운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연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퇴사자에게 연락하는 건 늘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미안함과 염치와 급함이 한꺼번에 손에 잡힌다.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최대한 공손하게, 최대한 짧게,
최대한 살려달라는 느낌이 나도록.
팀장님은 예상보다 빠르게,
그리고 아주 세심하게 답장을 주었다.
“이 건은 먼저 이 순서로 정리하시고요.”
“이 부분은 그때 이렇게 처리했어요.”
“혹시 이 사람 연락 안 되면, 이쪽으로 한 번 더 확인해 보세요.”
메시지는 세심했고 친절했다. 역시 월급이 나오는 회사에 적을 옮긴 사람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달까. 나는 휴대폰을 보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든 설명이 끝났을 때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이 보내져 왔다.
여행자에게서 엽서 한 장을 받듯이.
새 회사 로고가 귀퉁이 한 켠에 보일 듯 말 듯 박혀있는 전면의 유리창, 높은 시야 아래 깔려있는 도심의 풍경, 그리고 붉게 물든 노을. 노을은 언제나 그 색일텐데 사진 속에서는 유난히 일을 잘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웃음이 솟았다.
‘이토록 노골적인 첨부파일이라니!’
부러웠다. 그 우쭐함이 조금 웃기기도 했다. 노을이 저렇게까지 열심히 자기 소개를 할 일인가 싶었으나 또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급여를 주는 새 회사, 그것도 이직, 첫 주의 노을은 원래 과장되게 빛나는 법이다.
회사를 떠나간 전 동료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창업을 했다는 사람들, 이직 후에 프로필 사진이 갑자기 선명해진 사람들.
노을은 아니었지만 그들 또한 늘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지금 우리는 형광등 아래에 있었다. 조금 윙윙거리고, 가끔 깜빡이는 자리. 굳이 비유하자면 업데이트 알림을 계속 미루는 앱이 되어버린 기분이랄까. ‘나중’ 버튼을 너무 자주 눌러서 이제는 알림도 무성의해졌다. 그렇다고 삭제하기엔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새로운 업무가 잔뜩 쏟아졌다. 인수인계를 대신한 설명은 파일 이름으로 대신했다. 바쁠수록 마음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복잡한 감정은 시간이 있어야 자라는 모양이었다.
퇴근길,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기에도 노을은 있었다. 회사 로고도 반짝이는 유리창도 없었지만 적어도 하늘은 급여의 유무와 관계없이 공평하게 풍경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굳이 남길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그냥 지나가도 되는 날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