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몇 달 동안 명상 수련을 했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사념과 씨름할 뿐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이름난 스승을 찾아가 명상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스승이 말했다.
“비법은 간단하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단, 절대로 원숭이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남자는 기뻐하며 그 조언대로 명상을 시작했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원숭이가 있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원숭이를 본 적도 몇 번 없었다. 원숭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니, 이보다 쉬운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눈을 감자마자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이 원숭이였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나타났다.
며칠 후, 남자는 거의 미치기 직전이 되어 스승을 찾아가 애원했다. 제발 자기 머릿속 원숭이를 없애 달라고.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명상할 때 오직 원숭이만 생각하라.”
남자는 이제 그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고 기뻐하며 돌아왔다. 그러나 눈을 감고 앉아 원숭이를 생각하려고 하자 금방 닭이나 소, 오리 등 다른 잡념이 끼어들었다. 마음을 다지고 다시 원숭이에 집중하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생각은 억압할수록 더 강해진다.
집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 중 어떤 이는 환영하고 어떤 이는 못 지나가게 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행인들과 다투느라 이내 지쳐 버린다.
생각이 오고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지켜볼 때 비로소 명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승은 보여준 것이다.
- 도서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류시화 作 ] 中, '원숭이는 생각하지 마' -
이 글을 읽을 때, 카페에서 만난 친구들과 나눈 얘기가 생각나서 웃었다.
거창한 명상이 아니더라도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제시해 준 그 친구들의 말이 결국 글 속 스승의 말과 닿아 있었다.
“힘 빼세요.”
병원 검진을 받을 때, 주사를 맞을 때, 간호사에게 이런 요구를 받았다.
그럴 때면 늘 ‘힘은 어떻게 빼요?’ 하고 묻고 싶었다.
풍선에서 바람을 빼는 것도 아니고, 나는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내 몸의 힘을 빼는 방법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긴장하면 어금니를 악물거나,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힘 빼라는 주문을 받으면 나는 입을 살짝 벌리거나, 어깨를 늘어트렸다.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모든 일이 알게 돼서 방법을 찾게 되고, 해결되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 마.”
“잊어버려.”
“신경 쓰지 마.”
말에 예민한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주문을 받으면 늘 궁금했다.
도대체 생각하지 않는 건, 잊어버리는 건, 신경 쓰지 않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컴퓨터가 아닌 나의 머리에는 ‘delete 키’가 없다. 그렇다 보니 잊고 싶다고 잊고, 지우고 싶다고 지울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하지 못했다.
그런 기능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아쉽게도 내게는 그런 기능이 없다.
굳이 덧붙이자면, 기억력이 좋은 것을 보니, 오히려 불필요한 백업 저장 기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저는 짜증 나면 자요. 자고 나면 기분이 좀 풀리더라고요.”
그즈음 제일 자주 만나는 손님 중 한 명인 K와 우연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짜증 났는데 잠이 와?”
“네.”
짜증이 나면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생각을 들쑤시고 돌아다녀, 잠을 못 자는 나로서는 K가 신기하고 부러웠다.
혹시 K라면 ‘생각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해서 물었다.
얼마 전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분 말에 기분이 좀 상했다.
그리 좋아하는 분이 아니어서 말이 거슬린 건지, 아니면 그분이 나에게 말실수를 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다른 분께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예민한 건가요? 아니면 그분이 말실수한 건가요?”
그때 돌아온 대답이 ‘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신경 쓰지 마.’였다.
이미 신경이 쓰여 던진 질문에 돌아온 답변이 그랬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어렵더라고. 생각하지 마, 신경 쓰지 마, 잊어버려. …… 어떻게 하면 그렇게 돼?”
“근데, 그걸 왜 물어보셨어요?”
K는 나의 질문에 질문을 던졌다.
“뭘?”
“그게 기분 나쁜 말인지 아닌지를요.”
“그거야, 정말 오해한 걸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그 말을 같이 들은 분이 있었고, 그래도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해 주지 않을까 해서.”
K는 정말 나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왜 중요해요?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제 기분이 상했으면, 그건 기분 나쁜 말이 맞는 거 아니에요?”
K는 어깨를 으쓱했다.
“평소에 그분에 대해 좋은 감정이 아니었거든. 별 뜻 없는 말에도 내가 오해할 수 있잖아. 아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 같아.”
그날, 출생 연도가 내 대학 학번과 엇비슷한 K가 나에게 사고의 팁을 하나 던져주었다.
“그것 보세요.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는 건, 그분은 원래 사장님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었던 거잖아요? 뭐 나쁜 사람이 아닐 수는 있겠지만, 분명 나하고는 안 맞는 사람이니까. 또 말을 저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신경 쓰지 않거나,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게 아니고요.”
이런 표현은 좀 꼰대스럽지만, 나 때는, 남을 향해 손가락질하면, 검지를 남을 향하고, 엄지손가락은 하늘을 향하고, 남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하는 법이라고, 남을 한번 탓할 때, 나를 세 번 돌아보라는 가르침을 받았었다.
(진짜, 진짜 이런 표현은 나이 들어 보일까 봐 묻어두고 싶지만,) 보기에 따라 좀 이기적일 수도 있고, 개인주의적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이 친구의 생각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무의미한 의문으로 마음에 담지 않고, ‘아! 이 사람이 또 이렇게 말하네. 늘 말을 저렇게 한다니까. 기분 나빠!’하고 지나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