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갑니다.
칡넝쿨이라 생각하고 붙든 것이 하필 그늘에서 자는 호랑이 꼬리였습니다.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나무꾼은 깜짝 놀라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화가 난 호랑이는 나무를 마구마구 흔듭니다.
나무꾼은 그만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필 떨어진 곳이 호랑이 등이었습니다.
나무꾼이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면 그만 호랑이의 먹잇감이 되어버릴 것이 뻔해 보입니다.
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한편 호랑이는 나무꾼을 떨어트리기 위해 힘차게 달립니다.
땡볕에서 일하던 농부가 먼 산에서 호랑이에 매달려 달리는 나무꾼을 봅니다.
그리고 신세한탄을 합니다.
“어휴- 나는 평생 땀 흘려 일하는데,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서 호랑이 등을 타고 놀고 있으니…….”
몇 년 전에 ‘카톨릭 대학병원’ 소인이 찍힌 등기우편을 하나 받았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병원에서 온 우편은 열기도 전에 내용이 예측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로부터 10년 전,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에서 친구를 만나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당시 그곳에는 백혈병으로 아들을 보낸 중견배우와 기관에서 ‘조혈모세포 기증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나와 친구도 혈액 샘플을 뽑고, 기증서를 작성했다.
우편물의 내용은 조혈모세포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과 환자에 대한 대략의 정보였다. 재생불능성 빈혈을 앓고 있는 28세 여성이며 조혈모세포 기증만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부탁보다 더 간곡한 당부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기증 의사를 밝히신 지 오래되었기에 심경의 변화가 있으실 수 있음을 이해합니다. 혹시 의사가 없으시다는 연락이라도 꼭 해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부탁이었다.
2만 분의 1의 확률로 조혈모세포가 환자와 맞은 나는, 순간 걱정과 두려움에 핑계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내 나이는 이미 마흔 살이 넘었고, 빈혈이 있었고, 3일간 입원해야 한다고 하니, 어린 딸이 걱정되었다. 이 상황을 전해 들은 동네 친구가 자신이 우리 딸을 돌봐 주겠다고 한다. 남편은 혹시 필요하면 자신이 월차를 쓰겠다고 한다. 예상치 않게 주변 사람의 반응은 이만 분의 일의 확률로 선택된 나의 기회에 협조적이었다.
이틀쯤 망설이던 차에 조혈모세포 은행 코디네이터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모든 상황이 가능했다. 다만 사전 검사 후 백혈구 생성 촉진제를 맞으면 두통과 어지럼증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의 수반되는 불편을 전해 듣고 선뜻하겠다는 답변이 나가지 않았다. 딱 하루만 더 생각하고 바로 전화드리겠다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생각하니, 혹시 이 좋은 일이 그간 내가 살면서 저지른 잘못들을 상쇄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됐다. 다음 날 아침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담당자는 연신 감사인사를 하고는 스케줄이 결정되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조혈모세포 기증이 기증자를 찾고 동의를 얻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처럼 바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사흘쯤 지났을까?
담당 코디네이터에게 전화가 왔다. 애석하게도 환자분의 상태가 악화하여 기증받는 것을 포기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혹여 그녀의 상태가 그 시간 동안 손쓸 수 없게 나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망설인 3일의 시간을 후회했다.
그제야 나의 결심은 그녀의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닌, 그저 자기만족, 혹은 보여주기 식 선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더 미안했다.
염치없게도 누군지도 모르는 그녀의 안녕을 여전히 바란다.
어쩌면 농부는 호랑이를 탄 사나이가 위험에 빠진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아는 체하면 목숨 걸고 나무꾼을 구해줘야 하거나, 혹은 나무꾼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혹시 농부는 신세 한탄으로 타인의 상황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을지 의심이 든다.
#호랑이를탄사나이 #멀리서보면희극가까이서보면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