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 들어가면, 시금치도 싫어!

by 수다하리

“지원 에미,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어른들 앞에서 뭐 하는 짓이야? 대현이랑 수현이랑 우리 가족 다 같이 얼굴 보는 게 1년에 몇 번이나 된다고. 명절에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는 게 그렇게 불만이냐? 그랬어?”

“아버지, 그런 거 아니에요.”

정대현 씨가 일단 나섰지만, 정대현 씨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김지영 씨가 정대현 씨를 밀어내며 차분히 말했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주셔야죠.”

결국 정대현 씨가 아내의 입을 틀어막아 끌고 나갔다.

-[82년생 김지영] - p.18 -



책을 읽은 지 오래돼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책이 우리 집 책장에 없는 것이 누구를 빌려주고 돌려 받지 못했지 싶다.

어쨌든 김지영 씨 남동생은 미혼이겠지?

만약 김지영 씨 남동생이 결혼했다면, 그 집 삼 남매도 명절에 만나는 건 불공평하니까.




명절 전후로 아줌마들의 커뮤니티에는 시댁 얘기가 눈에 띄게 올라온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는 ‘시’ 자 들어간 사람들의 만행을 성토하는 글로 게시판이 뜨끈하다.


그중 다른 입장의 글이 있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자신은 2남 1녀 중 중간이며, 남동생이 오빠보다 먼저 결혼했고, 오빠는 최근에 베트남 여자와 결혼했단다.

자신의 엄마는 며느리가 둘인데, 큰며느리는 한국 문화를 잘 몰라서, 작은 며느리는 맞벌이하다 보니, 제사며 명절이며 늘 혼자 준비한단다. 이제 엄마도 연로하여 예전처럼 건강하지도 않은데. 혼자 애쓰는 걸 보니 너무 안쓰럽고 속상하단다. 그래서 오빠랑 남동생에게 ‘며느리들은 뭐 하냐’라고 한마디 했더니, 남동생이 그러더란다.

“누나, 요즘 그런 얘기 하면 다 안 살고 도망갈걸!”

빈말이라도 미안하다 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남동생이 괘씸해서 대판 싸웠다며 게시판에 물었다.

“제가 못할 말을 했나요?”


그 아래로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 그럼 따님이 하시면 되겠네요. 그 제사상, 며느리들 조상님 제사상인가요? 조상님들도 당신 자손이 차려주는 밥을 더 좋아하실 거예요.

- 그런데 왜 며느리가 둘인 걸 얘기하세요? 아들이 둘인데, 아들이 도와주지 않는 걸 따지셔야죠.

- 따님이 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아! 출가외인이라? 그러면 남의 집 일에 왜 참견하세요?

- 이래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하는 거예요.

등등.


하루는 친구가 짜증을 억누르며 시누이에게 온 문자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올케, 오늘 엄마 생신인데 전화는 좀 드리지? 그래도 며느리 도리는 해야지~”

친구는 이번 시어머니 생신이 평일이라 주말에 가족들과 미리 케이크를 사서 시댁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때 간소하게 생일파티를 했는데, 당일에 전화를 드리는 문제가 며느리 도리까지 들먹여야 하는 거냐며 열을 올렸다.

“아니, 내가 며느리 도리를 안 한 건 또 뭐가 있다고?”

나는 친구와 마주 앉아 같이 한숨을 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짧은 문자 한 통은 친구에게 쉽게 털어낼 수 없는 스트레스를 만들어 주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시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딱히 ‘시월드’를 논할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나처럼 시부모님이 안 계셔도, 심지어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도 누군가가 시댁에서 겪은 일을 듣게 되면 공감할 수 있다. 우선 가까이 엄마를 보며 간접 경험치를 쌓았으니까.


시아버님 장례식장에서 맏며느리인 나는 장례지도사의 지도에 따라 다른 가족보다 세 번씩 몇 차례 절을 더 했다. 그저 관례적인 일이라 여기고 따랐는데, 잠시 짬이 났을 때 시동생이 장례 지도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형수님만 절을 더 해요?”

장례지도사가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가장 큰 죄인이니까요.”

시동생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럼 내가 해야 하는데…….” 했다.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우리의 젖은 눈은 웃고 있었다.

그때 우리 가족 모두 아버님을 보내드림에 어찌 미안함이 없었을까?

벌써 5년 전 일인데, 지금도 내가 절을 더한 것이 장례지도사가 말한 그 이유는 아니었을 것 같다. 아니,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버님께 잘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래도 그중 아버님 손을 제일 많이 잡아드렸고, 손발톱을 깎아 드렸고, 가장 미안해했고, 가장 마음을 많이 쓴 사람은 분명 나였을 거다. 그런데도 불효의 죄를 논할 때, 당신이 낳아 키운 자식들이 아니라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더 큰 원죄를 지어준다면 그건 좀 억울할 것 같다.


사실 나도 오빠가 결혼하고 올케언니가 엄마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고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낫이 좀 뜨겁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절대 잊지 않는 사실 하나가 있다.

우리 부모님이 낳고 정성을 다해 키운 건, 올케언니가 아니라 ‘나’라는 것.

운 좋게도 나는 좋은 올케언니를 가족으로 만났다. 언니는 우리 부모님을 살뜰히 챙긴다.

나는 그런 언니가 참 고맙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언니는 고맙다고 하는 내가 고맙다고 한다.


게시판의 글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며느리 도리 하기가 꼭 학생이 공부하는 것 같다.

해야 하니까 잘하든 못하든 마지못해 해야 한다.

물론 개중에는 시댁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 공부가 정말 좋아서 하는 학생이 있는 것처럼.

누가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어진다.

막 공부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너는 공부 안 해?”, “공부 좀 해!”하면 하기 싫었던 것처럼.

남편이든 시댁 식구 누구든 ‘시댁에 좀 잘해라!’하면, 정말 하기 싫어진다.

더욱이 “내가 너 잘하나 못하나 어디 지켜볼 거야!”하고 누군가 눈을 부릅뜨면,

하던 공부도, 며느리 도리도 접을 판이다.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주도’다. 며느리 도리도 그런 것 같다.

부디 ‘시’ 자 들어가신 분들, 시간 나면 당신의 오답 노트를 한번 작성해 보시길.

당신은 정말 괜찮은 누군가의 며느리며 올케인지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당신 집에 며느리로 들어온 남의 집 귀한 딸의

틀린 점 찾기에 열 올리지 마시고,

∨첨삭 지도할 생각일랑 접어두시고,

맞은 것, 잘한 것을 그저 마음으로 칭찬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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