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말

by 수다하리

딸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풀었던 국어 학습지의 문제다.

정답은? 2번

딸아이의 답은 4번이었다.

딸아이에게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라고 했더니, 이 문제를 왜 틀렸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연지가 편지를 쓰는 이유가 뭐야? 여기 뭐라고 쓰여 있어?”

“죄송해요.”

“그래. 그러니까 연지의 마음이 뭐야?”

“근데, 엄마, 연지가 거짓말 한 걸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했으니까 연지의 마음은 후련한 거 아니야?

모든 엄마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진리다.

고집스러운 아이에게 이 문제를 납득시키는데 미숙했던 나는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영아, 편지에 연지가 선생님께 ‘죄송해요’했잖아. 네가 연지 마음이 어땠을지를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문제에서 드러나는 연지 마음을 묻는 거야.”

이런 문제 하나로 진을 빼는 것도 싫었고, 빨리 공부를 끝내고 쉬고 싶었다. 그리고 사소하게라도 아이와의 기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아이가 말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야.”

어디 학습지 문제 풀이만 그랬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치 모든 일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되려 아이보다 더 불안해하고, 윽박지르며 지내왔다.

아이에게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아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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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학교를 다녀온 아이는 한껏 풀이 죽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애들이 나한테 욕했어.”

“왜? 무슨 일 있었어?”


딸에게 전해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얘들아, 선생님이 내일 점심에 짜장면 사줄까?”

종례 시간, 담임 선생님의 제안에 아이들은 모두 환호했다.

“그런데 조건이 있어. 다른 반 애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해. 약속 지킬 자신 없는 사람만 손들어 봐.”

딸아이를 포함 세 명의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약속을 지킬 자신 없는 친구들이 있네. 그럼 없던 일로 하자.” 하셨다.

다음 분위기는 말 안 해도 그려진다. 실망한 아이들이 아우성을 쳤다.

“자,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볼게. 선생님이 내일 점심에 짜장면을 사줄게. 다른 반 친구들에게 얘기 안 할 자신 없는 사람만 손들어 봐.”

이번에는 딸아이만 손을 들었다.

“자, 영이는 자신이 없다 하네. 없었던 일로 하자.”

아이들이 아무리 아우성쳐도 그렇게 짜장면은 물 건너갔다.


아이의 말을 전해 들은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학부모들의 걱정 1순위는 학업성적이 아니다. 혹여 학교에서 친구나 제대로 사귀고 있는지,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안심이 된 후에 할 수 있는 걱정이 공부가 아닐까 싶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눈치 없는 아이일 줄은 몰랐다.

순간 언성이 높아졌다.

“왜 그랬어?”

머얼?”

아이는 정말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왜 손을 들었어?”

“나는 그냥, 선생님이 짜장면을 시켜주면 교실로 짜장면 배달을 올 거고, 다른 반에서 다 봤는데, 애들이 ‘너희 짜장면 먹었지?’하고 물어보는데, ‘아니!’하고 대답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없다고 한 건데, 그런데 애들이 나 때문에 짜장면 못 먹게 됐다고 욕하고, 치고 가고 그랬단 말이야.”

“그럼, 애들 입장에서 너 때문에 못 먹게 됐는데, 당연히 화가 나지!”

“엄마까지 왜 그래? 엄마라면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게 아니야? 내가 오늘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냈는데.”

아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아이의 일은 내가 겪는 일보다 더 신경 쓰이고, 더 아프다.


혹여 다음 날도 아이에 대한 원망이 이어지지나 않을까, 이 일로 아이가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망설이던 끝에 담임 선생님께 전화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전해 들은 얘기를 조심스레 전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날과 다음 날, 전국적으로 학교 급식 파업이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자신이 싸 온 도시락을 비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한테 무엇을 싸 달라고 할지 얘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개중에는 형편이 안 되는 아이가 있으니 마음이 쓰였다.

더욱이 다음날, ‘생존 수영 수업’이 있는 터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실내 수영장으로 이동해야 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좀 일찍 나가 중국집을 들렀다 갈 계획이었다.

“제가 그런 계획까지는 말하지 않았으니, 영이가 충분히 오해할만했네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영이 좀 바꿔 주십시오. 제가 직접 사과하겠습니다.” 하셨다.

선생님의 좋은 뜻과 아이의 솔직함이 섞인 맛이 이렇게 쓰디쓸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올 초, 마음이 무너질 때, 나에 대한 모든 것이 흔들렸다.

“내 주제에 작가가 되겠다고?”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이 부분이었다.

적어도 작가를 꿈꾸려면, 아는 것도 많고, 독서량도 많고, 생각도 깊어야 할 텐데,

나는 그 무엇도 충족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다지 의지가 강하거나, 성실하지도 않다.


친구 G에게 내 심정을 얘기하다가 눈물이 쏟아졌다. G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니야, 인아. 너는 분명히 작가가 될 거야. 나는 벌써 나 아는 사람들한테, 내 친구 중에 곧 작가로 성공할 애가 있다고 말하고 다녀.” 했다.

빈말이라도 상관없다. 약효 없는 ‘플라세보 효과’라도 여전히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즈음, 친구 L은 자격증 시험을 권유했다.

“자기 말대로, 작가가 되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 이쪽이 신설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T.O가 있으니까, 이걸 좀 해 보는 게 어때? 상담직이라 자기는 잘할 것 같아.”했다.

그 또한 분명 나를 걱정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내가 부정하는 내가, 타인에게도 그렇게 보이는구나, 이 친구에게도 내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구나’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씁쓸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더 무너질 마음 따윈 없었다.


남편에게 L이 자격증 시험을 보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나도 솔직히 그게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남편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계속 글 써요. 지금 잘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잘될 거라고 믿고요.”

키 큰 남편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나는, 내가 힘든 순간에, 내가 듣고 싶은 말과 상대가 도움을 주려는 말을 함께 들어봤다.

그 순간 내가 잡고 올라온 말은, 결국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가끔 ‘우리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은 선생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딸이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딸은 그저 위로가 필요했던 거였다.

국어 문제집을 풀 때, 그렇게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라 다그쳤던 내가, 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라면, ‘우리 딸,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먼저 말해줬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짜장면에 흔들리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던, 4학년 우리 딸에게 말해줘야겠다.

“그때 엄마 때문에 속상했지? 그런데 엄마가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딸이 맞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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