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될 줄 알았어!

by 수다하리

배고픈 여우 한 마리가 포도 넝쿨에 달려 있는 포도송이를 따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높이 달려 있었다.

배고픈 여우 한 마리가 포도 넝쿨에 달려 있는 포도송이를 따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높이 달려 있었다.

여우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높이 뛰어봐도 포도송이에 닿지 않았다.

여우는 도저히 포도를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여우는 포도송이를 지나치며 말했다.

“아직 익지도 않았는걸, 뭐. 어차피 신포도라 따 봐야 먹지도 못했을 거야. 안 따길 잘했네.”









유명한 [이솝우화], '신포도'이야기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신세한탄을 하거나,

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거나,

여우처럼, '어차피 됐어도 별거 없을 거야'라는 식으로 못 이룬 일을 폄훼한다.

하지만, 결국 닿지 않은 포도를 보며, '아, 진짜 맛있었을 텐데…'하고 내내 아쉬워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 여우의 사고방식은 분명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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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갑니다. 8월 12일(목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다.”

가게 문 앞에 공지를 붙여 놓았다.

그해 여름휴가는 코로나의 기승으로 여행 계획을 잡을 수도 없었지만, 집 이사를 해야 해서 쉴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일주일의 공백과 이사 피로 때문인지, 다시 가게에 나갈 일이 걱정됐다.

그런 목요일 아침, 카톡이 왔다.

- 사장님, 오늘 몇 시에 오픈인가요?

- 12시~ ^^ 이따 보나?

- 넵,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어쩌다 한번 들르는 손님은 꼭 쉬는 날 온다. 그러고는 갈 때마다 내가 쉰다고 말한다. 장사하는 것은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 헛된 발걸음을 돌렸다고 말하면 마음이 참 불편하다. 다행히 그날 A가 온다는 문자에 가게로 나가는 걸음이 서둘러졌다.


A는 그해 2월 카페 인근 대학교를 졸업했다. 아무리 친했어도, 보통은 졸업한 후, 우리 카페에 잘 오지 않는 것은 예삿일이다. 이래저래 다들 바쁘니까.


“저, 취직할 때까지 사장님한테 안 오려고 했는데, 그럼 못 오게 될까 봐 왔어요.”

두 달 전쯤, A는 오랜만에 들러서는 싱거운 농담을 하고 갔었다. 그런데 이번엔 공기업 최종 합격을 했고, 곧 출근 예정이라고 했다. 며칠 전에 왔었는데, 가게 문 앞에 ‘12일에 돌아오겠다.’는 문구를 보고 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카페를 할 때, 카페에서 만나게 되는 누군가가 나를 정말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날처럼. 내가 뭐라고.


가게를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동네 지인들이 심심찮게 놀러 왔었다. 아줌마들의 유쾌한 수다가 가게를 가득 울리고, 나는 한쪽에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이 친구, 항의라도 하듯이 책장을 팍팍 넘기는 것이었다. 미안해서 쓰였던 신경이 신경질이 되기 시작했다. 커피값 환불해 주고 나가라고 할까도 생각했다. 그 학생이 A였다.

A의 첫인상은 과히 좋지 않았다. 좀 예의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친해진 후 이 얘기를 했더니, ‘아! 저 도서관에서도 책장 좀 살살 넘기라고 얘기 들은 적 있어요.’하며 웃었다.)


A가 다시 카페에 온 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옆 건물 2층밖에 놓인 실외기까지 흔들렸다. 함께 있던 지인이 그걸 가리키며 걱정했다. 한쪽에서 공부하던 A가 궁금한지 옆으로 와 우리가 보는 방향을 같이 봤다. ‘이 바람에 저 실외기가 떨어지지 않겠지?’ 하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며 웃었다. 그렇게 A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A는 중학교 다닐 때, 하루는 엄마가 일이 있어서 나오는 길에, 자신을 학교 뒤편에 있는 아파트에 내려 준 적이 있다고 했다. 늘 내리던 버스 정류장이 아닌, 학교 뒤 아파트에서, 학교가 보이는데 길을 몰라 헤매다가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학교에 어떻게 가는지를 물었단다. 그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눈앞에 보이는 학교에 어떻게 가는지를 물으니 아주머니가 자기를 좀 이상하게 보는 것 같더라고.

“제가 엄청 길치거든요. 그런데, 저 운전병 출신이에요.” 하고 말을 덧붙여 웃었다.


A는 중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해서 인문계를 갈 수 없는 실력이었다고 했다.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지만 인문계가 아닌 고등학교도 가고 싶지 않았단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했다고.

고등학교 와서도 별로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단다. 눈 뜨는 시간이 학교 가는 시간이었다나.

“그래서 몇 시에 학교에 갔는데?”

“급식 시간 때 갈 때도 있고, 늦으면 급식 시간 지나서 갈 때도 있고…….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 부탁인데, 학교는 제시간에 와 주면 안 되겠니?’하고요. 선생님 부탁을 들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학교는 제시간에 갔어요.”

세 번째 만났을 때, A는 참 엉뚱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A가 말했다.

“저는 자신이 운이 없어 이 대학에, 이 과에 온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보면 이해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다니는 대학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니죠?”

허를 찌른다는 표현이 맞을까? 정말 다들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도 그랬고.

A는 남들보다 늦게 정신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대로 성적이 올랐다고.

수능 날, '시험 시간이 끝났습니다. 지금 마킹하면 부정처리하겠습니다. 다들 답안지에서 손 떼십시오'라는 감독관의 말에, 뒤에 열 칸을 마킹을 못한 채 답안지를 제출했다고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마킹하는 애들도 있었는데, A는 감독관이 안된다고 했으니, 하지 않았단다.


“1 지망으로 지원했던 학과에 예비 합격자에 올랐다가 떨어졌어요. 만약 아무 번호라도 마킹을 해서 한두 문제라도 더 맞았으면, 정말 제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글쎄,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다들 그렇겠지요. 다들 아쉬운 게 없어진다면, 저는 다시 이 과에 왔겠지요. 저만 아쉬운 게 아니었을 거니까요.”

그리고 출근 날짜를 받은 A는 한껏 들떠 말했다.

“그런데요. 사장님, 제가 그때 공부를 더 잘해서 1 지망이었던 기계공학과를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토목을 전공해서 취직한 거거든요.”

A를 보면 즐거웠다. 늘 웃는 낯빛이 좋았다.

그저 밝고 긍정적이기만 했어도 좋았을 아이인데, 상황에 대해 만족을 할 줄 아는 아이여서 더 좋았다.

누군가는 아쉬움이 남아야 발전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쉬워만 하면 채움이 없지 않을까?

나는 A가 잘될 줄 알았다.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아쉬워하기보다는 자신이 잘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 이 친구가 잘 되는 것은 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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