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이 필요한 그녀

불편한 그녀 - 1

by 수다하리


H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잠시 일이 있어서 밖에 나왔다며 시간 괜찮으면 점심을 같이 먹자 했다. 그러자 했다.

H는 메시지로 식당 한 곳을 링크 걸어 보냈다. 파스타 전문점이다.

단가가 고만고만한 식사를 하게 된다면, 한 사람이 밥값을 내고, 다른 사람이 찻값을 내면 되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은 좀 달랐다.

더치 페이.jpg

가게를 하면서 친해진 뒷길 감성주점 사장과 술을 한잔하게 된 날이 있었다.

감성주점 사장은 최근에 왔던 학생 손님들 얘기를 했다.

“네 명이 와서, 와인잔에 가득가득 4잔을 따르더라고요. ‘어! 저렇게 따르면 와인 향이 날아갈 텐데……. 혹시 와인 마시는 법을 몰라서 그런가? 가서 말해줄까?’ 하다가 말았아요.”

“말해 주지 그랬어.”

감성주점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치페이더라고요. 이 비싼 술을 누가 더 많이 마셨네 어쩌네 하느니 공평하게 따라서 마시는 거죠. 그깟 와인향 조금 날아가는 게 대수겠어요?”

“현명하네.”

나는 감성주점 사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더치페이가 익숙하지 않다. 아마도 70년 대생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대학생 때는 ‘선배는 식권이다’를 부르짖으며 선배에게 얻어먹은 밥을 후배에게 사주었다.

친한 몇몇과 함께 밥을 먹으면 ‘지난번에 네가 샀으니, 이번에는 내가 살게’ 하며 자연스럽게 순서가 정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에게 밥을 사 준 금액이나 내가 누군가에게 밥을 얻어먹은 금액이 얼추 맞아떨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아니, 어차피 나는 내가 조금 더 쓰는 것이 마음 편하니, 그렇게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은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겨서가 아니라, 도의적인 수준에서 셈을 맞춘다.

소소한 금액이 쌓여 생긴 문제는 변제되기 힘든 관계의 채무가 되기도 한다. 번번이 입만 보태는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결국 소비 패턴도 비슷한 사람끼리 놀게 된다.

요즘 애들 표현으로 ‘끼리끼리는 매직’이다.


카페를 할 때, 지인과 점심을 하게 되면, 가게를 열어야 하니, 커피는 우리 가게에서 마셔야 했다.

‘자기 가게에서 차 줘.’하며 지인이 밥값을 계산하면, 다음번에는 염두에 두었다가 ‘오늘은 내가 밥값 낼게. 차는 사 마셔’ 했다.

“자기 커피값도 계산해.”

“아니야. 여긴 내 가게잖아.”

“그럼 이제 밥 먹고, 다른 집에서 커피 마시고 오자 한다. 자기가 밥값 냈으면, 다른 데 가서는 내가 찻값을 냈을 거잖아. 그러니까 자기 것도 계산하는 게 맞아.”

나와 친한 대부분 사람은 이렇게 셈을 맞춰주었다.


문제는 H다.

H와 밥을 먹으면 내가 계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싫으면 안 만나면 그만이겠지만 그런 이유로 안 만나기에는 나는 이 친구가 싫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는 분명 궁합이 존재한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정말 싫은 한 가지 때문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단점이 있지만 딱 한 가지 좋은 점 때문에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굳이 보태자면, H는 나에게 후자다. )

H는 내가 만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간혹 H가 밥값을 계산하면, 나는 우리 가게에서 커피를 주었다. 내가 밥값을 계산하면, H는 우리 가게에서 자기 찻값만 계산했다.

먼저 권하지 않는 이에게 ‘내 것도 사’하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어찌 됐든 이제까지 경험으로 보아, H는 이 식사비를 자신이 내겠다고 할 리 만무하다. 다른 사람처럼 지금 내가 이리 비싼 점심값을 지불하면, 한두 번쯤은 제가 밥값을 더 지불해서 균형을 맞춰줄 리도 없었다.

나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으로 살림하는 주부다. 그런 돈으로 누군가에게 과도한 선심은 베푸는 것은 남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밥값은 반반 내고, 차라리 찻값을 내자’였다.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당연한 것도 당연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식사하고 계산서를 H에게 밀며, ‘계산해, 반액 계좌 이체해 줄게 ' 했다. 무덤덤하게 그녀는 밥 값을 계산하고 식당을 나왔고 카페에 들어가 내 것까지 커피값을 냈다.

어쩌면 H는 나처럼 계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H에게 늘 내가 돈을 더 많이 썼노라고 말하면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의하더라고 그저 그러려니 할지도 모른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선뜻 밥값을 계산할 때도 있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감도는 야릇한 신경전이 싫어서 계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결국 이득 본 사람은 없이, 나 혼자 손해를 보며 지내온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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