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그녀 - 2
언제부터인가 A와의 만남이 유쾌하지 않았다.
‘시간 되면 연락해. 점심 한번 먹자’는 말을 ‘그럴게요’하며 의례적인 대답으로 넘겼다.
그날은 모임이 있어서 A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별 뜻 없이 최근 H와 만났던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게 처음이 어렵지, 더치페이해 버릇해야겠어요.”
그저 그때 일어난 일과 내 생각을 얘기했을 뿐이다.
나는 A에게 이 상황에 대한 평가를 받거나 조언을 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하면 안 돼.”
“네? 뭐가요?”
“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사람이 그렇게 계산적으로 살 필요가 없어. 내가 누군가한테 베풀면 다 돌아오게 되어 있어. 사람마다 셈법이 다 다른걸, 밥값을 누가 더 냈는지 그런 거 하나하나 따지면 나만 피곤해. 나중에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다 비슷하게 맞춰져.”
A의 말은 나를 계산적으로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부분은 좀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나는 오히려 남에게 퍼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사람이다. 그런 나를 오랜 시간 알아 온 A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못내 섭섭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는 그때 입을 다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순간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튀어 나간 말이 마치 변명 같았다.
“언니, H 아시잖아요? H여서 그랬어요.”
“그러면 차라리 그런 사람을 안 만나는 게 맞아. 그렇게 골치 아프게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만날 이유가 어디 있어?”
A의 말은 나를 싫은 사람을 골치 아파하며 억지로 만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언니, 저 H 좋아해요. 같이 밥 먹고 돈 계산만 더치페이로 하면 해결할 수 있는데, 왜 그 친구랑 인연을 끊어요? 싫은 사람이면 밥을 사준 대로 안 만나겠죠.”
“그래, 물론 그렇지. 그런데 살아보니까,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줄줄 알고, 받아 본 사람이 베풀고 …….”
그제야 나는 비로소 입을 다물었다. 내가 운전하는 내내 옆자리에 앉은 A의 교훈적인 얘기가 차 안을 채우고 나의 정신은 공중 부양 중이었다.
모임에서 내가 한 질문에 Y는 지나치게 예민하게 대답했다. 분명 그랬다.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껏 지내며 본 Y는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이다. 나는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Y에게 설명해야 했다
“선생님, 저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지금껏 해오신 내공이 저와 다르니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여쭌 거예요.”
Y는 그제야 진정된 말투로 질문에 답을 주었다. 다행히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다시 차에 올랐다.
아무래도 나는 머리가 좀 나쁜 것 같다.
“아까 제 말은 정말 별 뜻 없었는데, Y 선생님이 너무 방어적으로 말씀하셔서 당황했어요.”
그 사이 A의 존재를 잊고 내가 또 말의 불씨를 던지고 말았다.
“그냥 그 사람은 원래 그런가 보다 해. 그런 거 일일이 다 생각하면 피곤해서 어떻게 살아. 계속 신경 쓰면 결국 나만 손해야.”
A의 말은 나를 별거 아닌 일을 일일이 다 생각해서 피곤하게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니,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아까 그랬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게, 그러니까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나이가 들면 다들 자신감이 없어져. 그러니까 누가 뭐라 그러면 괜히 공격받는 것 같고, 더 방어하려고 말이 강해지고 그래. 그렇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고 걱정하고. 그런 거 하나하나 다 생각하면 나만 손해야. 나는 예전에…….”
미.치.겠.다.
내비게이션에서 좌회전하라는 지점을 2곳이나 지나쳤다. 어떻게 초행길을 운전해 집에 왔는지 모르겠다.
띵하게 울리던 공기가 가라앉고 가만히 생각하니 이내 불쾌했다.
도대체 A에게 나는 어떻게 보이기에 늘 저렇게 나를 가르치는 걸까?
그저 내 일상과 생각을 말하면 ‘그렇게 할 필요 없어’로 시작된 말이 돌아온다. 그러면 나는 ‘아니, 언니, 그런 뜻이 아니고요.’하며 억울함을 호소해 본다.
‘아니, 그러니까.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로 다시 시작되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A와 만남의 뒷맛은 늘 쓰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지 A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밥을 산대고 나를 만나지 않았던 누군가에게도 나는 그랬을 거라는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분명 누군가는 말이 많은 나를 향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맞아. 골치 아프게 생각하면서 만날 이유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