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수의 반에는 냄새나는 여자애가 있었다. 흔히 암내라고 부르는 겨드랑이 땀 냄새였다.
조용하고 착한 아이였다. 누구에게도 먼저 말 걸지 않았고 피해주지 않았고 남의 말을 하지 않았다.
냄새만 아니었다면 교실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게 된 아이. 가끔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비릿하고 톡 쏘는 냄새가 실려 오긴 했지만 참을 만했다.
철부지 중학생들이라도 차마 냄새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어느 날, 1교시가 막 시작됐는데 그 친구가 코피를 흘렸다. 흘렸다는 말이 무안할 정도로 늦여름의 소낙비처럼 마구 쏟아졌다. 검붉은 피가 비처럼 후둑후둑 떨어져 너무 얇고, 너무 새하얗던 여름 교복 블라우스를 적셨다.
옷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됐는데 갈아입을 옷이 없다고 했다. 선생님이 체육복 있는 사람? 하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부분 사물함에 두고 다니며 몇 번이고 입으니 많이들 체육복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 냄새가 옮는 거라고 했었다. 고개를 돌리며 눈을 피하는 친구들 가운데서 그 아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수가 대답했다.
“저 있어요.”
수는 천천히 교실 뒤편의 사물함으로 걸어가 체육복 상의를 꺼내왔다. 다음 날 수는 깨끗하고 향긋하게 세탁된 체육복을 돌려받았지만 이 일로 그 아이와 친구가 되지는 않았다.
- 조남주 장편소설 ‘사하 맨션’ p. 184~185 -
97년? 대충 그때쯤이지 싶다. 대학생이던 나는, 수원에서 서울로 광역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그때는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은 때여서, 현금 없는 생활은 불가능하거나 아주 불편했다.
버스를 타는 것도 그랬다. 물론 시내버스는 미리 회수권이나 토큰을 구매해서 탈 수 있었지만, 광역버스는 반드시 현금 승차를 해야 했다.
당시 요금은 1,300원.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 늘 지갑에 천 원짜리 지폐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 기사 요금 횡령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 후, 버스 안에는 요금통을 비추는 CCTV가 설치되었고, 오해받지 않으려 운전기사는 요금통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2천 원을 넣으면, 동전 버튼을 눌러, 칠백 원을 거슬러 주었으니, 동전이 없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버스에는 만 원을 거슬러 줄 지폐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간혹 지갑에 만 원짜리 밖에 없을 때면, 나는 버스 정류장 앞 구멍가게에서 잘 씹지도 않는 껌을 사기도 했다.
하루는 버스에 오른 여자 승객이 만 원짜리 밖에 없다고 난색을 보였다. 기사는 당신이 돈통을 만질 수는 없으니, 일단 돈을 넣지 말고 기다리라고 여자에게 말했다.
나는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여자 승객은 내 옆에 앉았다.
다음 정류장부터 기사는 승객이 탑승할 때마다 천 원짜리를 요금통이 아닌, 거스름돈 나오는 입구 쪽에 놓아달라 부탁했다. 이유를 모르는 승객들은 그저 기사의 요구에 따랐다.
그다음 정류장에서 승차한 승객에게도 기사는 똑같은 요구를 했다. 그 승객은 이해하지 못했고 ‘네?’하고 다시 물었다. 곧 버스는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고속도로로 진입을 앞두고 있었다.
이래저래 마음이 급해진 버스 기사는 다시 그 승객에게 말했다. 조금 짜증이 섞인 말투였다.
‘아, 네.’하고 대답한 승객은 거스름돈 나오는 입구에서 돈을 집어 요금통에 넣었다. 그러고는 자기 요금도 요금통에 넣었다. 그 승객은 기사가 요금통에 손을 댈 수 없으니, 거스름돈 통에 돈을 대신 좀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앗!’ 순간, 기사와 내 옆자리 승객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도 덩달아 그랬다.
전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그 승객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버스 안으로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다.
“저, 혹시…, 만 원짜리 바꿔 주실 돈 있으세요?”
옆자리 여자가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헉! 순간 생각났다. 그러고는 ‘아, 진짜 싫은데…’라고 조용히 투덜거리며, 나는 내 책가방을 열고 있었다.
설날이면, 엄마는 늘 신권으로 만 원 한 장, 오천 원 두 장, 천 원 열 장을, 새해 덕담이 적힌 짧은 편지와 함께 넣어 세뱃돈 봉투를 주셨다. 늘 그 세뱃돈을 복돈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 새 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았다. 간혹 비상금으로 쓰게 되니, 다음 세뱃돈을 받기 전에는 사라지는 돈이었지만, 부적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자의 시선은 내 손을 따라 움직였다. 나는 연신 ‘아, 진짜 싫은데…’하고 말했지 싶다.
나는 가방 안쪽 주머니를 열었고, 세뱃돈 봉투를 꺼냈다. 그러고는 오천 원 한 장과, 천 원 다섯 장을 꺼내, 여자의 만 원짜리 지폐와 바꾸었다.
빳빳한 새 돈으로 바꾸는 것이 그랬는지, 아니면 조용한 내 투덜거림에 신경이 쓰였는지, 여자는 고맙다는 말 대신, ‘죄송해요’라고 인사했다.
나는 줄곧 내 빳빳이 새 돈이 아까웠다. 너무 아까웠다.
만약 내가 돈을 바꿔주지 않았다면, 기사는 오백 원짜리 동전 17개와 백 원짜리 동전 2개를 여자에게 주었을 것이다. 불편은 했겠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버스를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학교에 가면서, 그제야 문득 생각했다.
“아, 씨, 그냥 없다고 할걸.”
그날, 나는, 고작, 그런 생각을 해냈다.
어린 수 역시 냄새가 옮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옷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불안했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친구를 동정하거나 위로하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그저 친구에게는 갈아입을 옷이 필요했고 수에게는 체육복이 있었을 뿐이다. 어떤 호의도 포함되지 않은 당연하고 단순한 판단. 의도도 계산도 없는 행동.
조남주 장편소설 ‘사하 맨션’ p.186
‘수’의 이야기를 읽는데, 문뜩 그때 일이 생각났다.
여자는 그저 내게 만원 짜리를 바꿀 돈이 있었는지를 물었고, 나에겐 그 돈이 있었다. 어떤 호의도 없었고, 내겐 돈이 있으니까 생각 없이 꺼내면서도, 그렇게 내 새 돈을 쓰는 게 싫었다. 정말 싫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25년 전의 일을 돌이키며, 만약 그때 내가 여자에게, ‘이거 저희 엄마가 새해에 주시는 복돈인데, 제가 특별히 드리는 거예요’,라고 웃었다면, 여자에게 죄송하다는 인사 대신,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차피 같은 가치의 돈이었고, 어차피 쓸 돈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