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틀어놓았다가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에 귀를 빼앗겼다.
두 명의 형사가 차 안에서 잠복 중이다. 로또 종이를 들고 있는 한 형사에게 다른 형사는 휴대폰으로 당첨 번호를 불러주고 있다. 5개의 숫자까지 일치하자, 형사의 표정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교차한다. 동료 형사가 여섯 번째 숫자를 불렀을 때, 형사는 좌절을 견디느라 몸부림친다. 함께 있던 동료는 ‘그래도 3등이면, 당첨금이 백만 원이 넘어’하고 위로한다. 그러자 화를 억누르며 형사가 말한다.
“알아, 알아. 근데, 그냥 내 운을 여기다 다 쓴 기분이 들어서 그래. 내 인생은 고작 백만 원짜리였던 거지.” (TvN 드라마 – ‘모범 형사 2’ 中에서)
로또 숫자 다섯 개가 맞아떨어지는 일이 일어난다면, 숫자 하나 차이로 인생 역전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누구도 백만 원이 넘는 당첨금에 기뻐하지 못했을 것 같다. 드라마의 형사처럼, 내 인생에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이런 큰 행운이 고작 백만 원이라는 사실에 서글플 것 같다.
남편은 일주일에 5천 원씩 로또에 투자한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핀잔을 준다.
“그 돈을 나한테 주세요. 일주일에 5천 원씩, 일 년이면 52주니까, 26만 원을 모아서 당첨금으로 드릴게요.”
남편은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일등에 당첨되면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계획을 말해주곤 한다. 그러다 한 번은 남편이 산 다섯 게임의 로또가 모두 4등에 당첨되는 일이 일어났다. 5만 원씩, 25만 원을 당첨금으로 받아서, 식구들과 함께 정육식당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고, 남은 돈으로는 평소보다 몇 게임 더 로또를 샀다.
나도 한두 번 로또를 해 봤지만, 숫자 3개를 맞추는 것은 고사하고, 5게임을 꽉 채운 종이 한 장에 맞은 숫자가 한두 개 밖에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확률 게임에서 어떻게 숫자 4개가 맞을 수가 있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남편이 말한 비결은 마치 영화에나 나올 듯한 이야기였다.
“꿈에 할머니가 나왔어요. 로또 번호를 불러주셨거든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중에 4개만 기억이 나는 거예요. 2개는 전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런데 그 4개 번호가 정말 다 맞았어요.”
남편이 돌아가신 할머니께 얼마나 애틋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당신이 아꼈던 손주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를 주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감동에서 내 생각이 머무를 리 만무했다.
“그럼 나머지 두 숫자를 다 넣어보지 그랬어요. 45개의 숫자 중에, 4개 빠지면, 경우의 수가 41X40이니까, 얼마야, 164개잖아요. 그래 봐야 20만 원도 안 들었을 텐데.”
(로또가 한게임에 천 원씩이니, 1,640,000원을 더 써야 한다. 산책길에 얘기하다가 잘못 계산했는지도 몰랐다.)
살짝 들뜬 나에게, 남편은 ‘그럴 걸 그랬나’라며 웃었다.
“진짜 그랬으면, 일단 다 4등이니까 5만 원은 기본으로 깔고 가고, 1등이 됐을 거고, 우와- 우리 진짜 대박 부자 됐을 텐데…….”
나는 당첨된 로또 종이를 바다에라도 빠트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아쉬워했다.
“진짜 그러네요. 1등뿐만 아니라, 2등도, 3등도 다 됐겠네요.”
“이런 일이 평생 살면서 또 일어나겠어요? 당신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거예요. 나한테 좀 물어보지 그랬어요.”
그러자 남편은 좀 더 큰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근데 물어보면 뭐라고 말했을 건데요?”
만약 남편이 이런 꿈을 꾸었는데, 로또를 이만큼 사겠다고 묻는다면?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럼요? … 사지 말라고 했겠지요.”
만약 그랬다면, 남편은 ‘거 봐요. 그때 사지 말라고 해서, 이런 기회를 놓쳤잖아요’라고 나를 두고두고 원망하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때 나한테 물어봐 주지 않아서 고마워요.”
함께 산책하는 길,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