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꼼지락, 뭔가 만드는 것을, 예쁜 종이로 포장하는 것을, 색이 고운 리본으로 묶는 것을 좋아한다. 그 사소함을 정성이라 받아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해의 5월 초, 반 아이들에게 간식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몇 시간을 쪼그려 앉아 포장하고 나니, 허리도 욱신거리고, 어깨도 뻐근한 것이, 이 짓도 좀 더 나이 들면 힘들어서 못 하겠구나 싶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포장에는 관심 없다. 그저 그 안에 든 달콤함 젤리와 사탕을 먹는 것이 즐거울 따름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도 예쁘게 담으려는 것은 일종의 자기만족이었다. 더불어 누군가가 던지는, 어쩜 이리 솜씨가 좋으냐는 칭찬을 즐겨서이기도 했다.
그즈음 같은 반 아이 엄마가 지나치던 나를 불러 세웠다.
“영이 엄마, 학교에 그런 거 보내지 말아요. 못 보내는 엄마들은, 애들이 그런 거 받아오면, 나도 해야 하나 싶어서 불편해져요.”
“아… 예….”
경상도 사람들의 투박한 말투에 채 적응하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원래 그런 말이 곱게 들릴 리 만무하다. 물론 그 말을 하기까지 그 엄마도 수십 번은 망설이지 않았을까.
어찌 됐든 나의 정성이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었다는 것이 씁쓸했다.
학교에서는 종종 선생님께 선물을 일제 금한다는 안내장을 보내오더니, 이듬해 김영란법이 제정되었다.
나의 정성은 급기야 법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을 존경한다. 크게 문제없는 딸아이 하나와 씨름하는 것도 이리 힘겨운데, 수십 명의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이미 선생님은 대단한 사람이며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직업이 선생님일 뿐, 그들도 사람인지라, 크고 작은 결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제껏 아이 학교 선생님께 불만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근본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대체로 우리 아이에게 좋은 엄마지만, 우리 아이는 나에게 늘 불만이 많지 않은가?)
아무 날이나 뜬금없이 인사하긴 뭣하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라고 정해진 ‘스승의 날’을 빌어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인사와 작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하지 말란다. 받으면 선생님들에게 불이익이 가게 된다고 마음만 전하란다.
하하-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마음이 아닌 것을, 어찌 마음만 전하는지요?
하지만 김영란법은 정당하다. 김영란법이 생겨서 오히려 편하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소리도 어렵지 않게 들렸다.
나의 작은 성의는 선생님께 우리 아이를 잘 봐달라는 부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로 인해 선생님도 불편하고, 다른 엄마는 충분히 불쾌할 수도 있으니,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점점 그래지더니, 점점 이름을 가진 날들이 특별하지 않았다.
별반 다르지 않은 날을 지내는 것은 좀 무료했다.
오늘은 빼빼로 데이다.
혹자는 물건 팔아먹으려고 만든 상업적인 날이라 치부한다.
So what? 그러면 안 되나?
10월 말부터, 꽃집 아가씨는 빼빼로데이에 판매할 상품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과자 상자를 종이로 싸고, 성글게 짜인 망으로 상자를 감싸고, 이미 초여름부터 잘 말려 준비해 놓은 작은 백일홍 꽃다발을 달았다. 그리고 그 위에 짧은 메시지를 리본으로 달아 완성했다.
예전보다 훨씬 예쁘지만, 전보다 판매 가격이 많이 올랐다. 과자 가격도, 포장재도 가격이 많이 올라, 상품의 판매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단다. 경기 불황에, 소비심리 위축까지 더해져서, 제대로 팔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꽃집 아가씨는 웃었다. 애잔했다.
나는 예쁜 것으로 골라서 선물 상자를 세 개 샀다. 많이 팔아주고 싶었지만, 생활비도 빤하고, 꽃집 아가씨도 불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선물을 줄 사람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신랑과 딸은 이런 예쁜 포장에 감동하기엔 좀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들인지라) 우리 식구에게 이 비싼 포장을 뜯게 하기엔 좀 아깝다. 다른 가족들은 멀리 살고…… 음- 이즘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선물할까, 오랜만에. 하지만 세 명으로 한정 짓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처럼 포장해서 선물하고 싶어졌다. 나는 모든 ‘다있소’하는 상점에 가서 포장할 도구를 몇 가지 샀다. 빼빼로는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서 주문했다. 그렇게 십여 개를 포장하여, 수요일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감동이라고, 고맙다고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헤어져서는 따로 메시지도 보내왔다.
이렇게까지?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다.
다들 나처럼 무료했던 모양이다. 작은 무언가로 톡 건드리면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 작은 무언가가 없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는 감사의 메시지에, ‘행복한 하루에 제가 일조했다니, 저도 행복합니다’하고 답신을 보냈다. 진심으로 그랬다.
그날이 그날 같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오늘은 특별한 색을 하나 입힌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일부러 만나서 주려고 몇 개 남겨 놓았다. 그까짓 빼빼로 상자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거리를 가득 채웠던 캐럴송 덕분에 날마다 축제를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예전에는 분명 그랬다.
나는 또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할 생각이다.
작은 초콜릿에 빨간, 초록 리본을 달아, 크리스마스 즈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