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시절 안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드라마의 인기는 대단했다. 여전히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내용을 거의 다 기억할 만큼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했다.
이 집에는 이란성쌍둥이로 태어난 후남이와 귀남이, 그리고 혹시 아들일까 해서 낳은 막내딸 종말이가 있다.
“귀남아, 콩 좀 볶아줄까?”
공부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묻자, 귀남은 ‘괜찮아요’한다.
“엄마, 나, 나. 나 콩 볶은 거 먹고 싶어.”
종말이가 졸라 보지만, 엄마가 들어줄 리 없다.
“오빠, 콩 볶은 거 먹고 싶다고 해. 나도 좀 얻어먹자.”
이번에는 오빠를 졸라 본다. 여전히 소용없다.
어린 시절 내 일상에, 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한 장면과 높은 싱크로율을 가진 기억이 있다. (어쩌면 기억에 약간의 수정과 조작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열 살 남짓했을 때지 싶다.
“아들, 통닭 사다 줄까?”
통닭을 좋아하는 오빠가 어쩐 일인지 ‘아니, 괜찮아’한다.
“엄마, 나! 나! 나! 나도 통닭 먹고 싶어.”
엄마는 못 들은 척했다.
“오빠, 통닭 먹자. 먹고 싶다고 해.”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서러워서 울어 버렸다.
“엄마는 맨날 오빠만 좋아하고….”
오빠가 아파서 제대로 뭘 먹지를 못하니, 좋아하는 통닭이라도 사다 주면 먹을까 해서 그랬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렇다고 서러움이 사그라들 리 없었다.
원래 엄마는 오빠만 좋아하니까.
“당신의 Soul Food는 무엇입니까?”
내가 참석하는 수업에서 강사가 던진 질문이다.
“저는 Soul Food는 모르겠고, 아직도 꼴도 보기 싫은 음식이 있어요.”
J는 자기 일화를 얘기했다.
J는 오빠 두 명, 남동생 한 명을 형제로 둔, 형편이 빤한 시골집 딸이었다.
엄마가 닭국을 끓여서는 오빠들에게 한 그릇씩 퍼 주었다. 당연히 다음은 제 순서이거니 기다렸는데, 남동생에게 먼저 주었다. 왜 동생 먼저 주냐고 따져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넌 딸이니까’였다. 그러고는 부스러기만 남은 고기를 긁어 담아 주었다.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었던지라 울고불고 난리를 쳐봤지만, 처우가 달라지기엔 엄마의 이유는 너무도 명확했다. J는 딸이었다.
J는 지금도 물에 빠진 닭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튀긴 닭고기를 좋아하는 걸 보니, 딱히 한 맺히지는 않았나 보다.
아니면, 기억은 기억이고, 닭고기는 닭고기이거나.
그해 겨울, 사촌 남동생 둘이 방학해서 우리 집에 놀아왔다. 나보다 한 살, 세 살 어린 동생들은 평소에는 나와 잘 놀았다. 평소에 우리 오라버니는 유치하고 시시해서 이 어린 녀석들과 잘 놀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오빠가 동생들과 놀았다. 남자들의 격한 몸싸움을 하면서. 나를 끼워줄 리도 없었지만, 딱히 끼고 싶은 놀이도 아니었다. 야릇한 따돌림에 나는 잔뜩 삐져있었다.
“심심하면, 엄마 따라 시장 갈래?”
세상 반가운 제안에 꽁꽁 얼어붙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저거 먹을래?”
이것저것 장을 보고는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가게에서 튀겨 파는 팥 도넛을 먹겠냐고 물었다.
“응” 나는 크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격이 얼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섯 개를 사면 조금 깎아주었지 싶다.
엄마는 가면서 따뜻할 때 하나 먹으라며 팥 도넛이 든 봉지를 내게 주었다.
“그럼 오빠랑 애들 먹을 때 구경해야 하잖아.”
엄마는 세상에 다시없을 달콤한 제안을 했다.
“지금 하나 먹어. 4개 더 있으니까 안 먹은 척하고, 가서 하나 더 먹어.”
“정말? 정말 나 두 개 먹어도 돼?”
엄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대신 비밀이야.’했다.
팥 도넛을 하나 더 먹는 것도 좋은데, 엄마와 오빠를 따돌리는 비밀까지 하나 생겼다.
엄마는 팥 도넛 하나를 더 먹은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내 입가에 묻은 설탕까지 야무지게 털어주었다.
집에 와서 엄마는 봐온 장을 정리하고 잠시 외출했다.
여전히 세 남자는 저들끼리 즐겁다. 빵 봉지를 부엌에 두고, 추위에 떤 몸을 녹이려 이불속으로 들어간 것이 깜빡 잠이 들었다. 아마도 엄마가 돌아오는 소리에 잠이 깼지 싶다.
부엌에는 빈 빵 봉지만 남아있다.
“어? 여기 내 빵은?”
오빠가 웃으며 “어, 그거 우리가 다 먹었는데.” 한다.
“뭐야? 빵이 네 갠데 셋이 그걸 다 먹었다고?”
오빠는 하나씩 먹고, 남은 하나는 셋이 나눠 먹었다고 했다.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니, 빵이 네 개면, 당연히 하나는 하리 거지. 어떻게 너희들끼리 나눠 먹을 생각을 해!”
오빠는 쭈뼛쭈뼛 ‘나는 하리가 하나 먹었을 줄 알았지.’ 했다.
“먹긴 뭘 먹어? 언제 먹을 시간이 있었어? 나갔다 와서 잠든 거 뻔히 알면서. 아니, 제 동생은 어디 가서 먹을 거 생기면 오빠 거부터 챙기는데, 어떻게 너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안 챙기니?”
그날 오빠는 엄마한테 야단맞았다.
팥 도넛 하나 더 못 먹은 게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 그날 엄마는 내가 평소에 오빠를 얼마나 챙기는 착한 동생인지를 인정해 주었고, 내 편을 들어 오빠를 야단쳐 주었다. 그게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른다.
그날의 팥 도넛이 Soul food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통닭 따위의 섭섭함을 밀어낼 만큼 행복한 기억의 음식임은 분명하다.
아직도 나는, 그날의 팥 도넛이 따뜻하다.
아! 정말 나이 들어 보이는 문장은 남기고 싶지 않지만,
70년대 중반에 태어난 우리들만 해도 '남아선호'의 분위기에 크고 작은 서러움을 겪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선생님들이 여자 아이들만 예뻐하고, 남자 애들은 차별한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남자아이 엄마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요즘은 오히려 '여아 선호'가 대세란다.
어쩌겠어. 그냥 노래나 흥얼거리며 나가야지.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인생은 회전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