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밥값 39 / 부정의 기록
이럴 때 나는 온갖 방법으로 나를 죽인다.
제일 먼저 손목을 긋고 입에 총을 넣어 쏜다. 약을 입에 털어 넣기도 하고 높은 곳에 목을 매달기도 한다. 늙고 병들어 죽는 거는 무서우니까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목 졸라 죽이는 상상을 해보지만 그것보단 내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를 죽이는 상상보다 더 쉽고 현실적이며 편안한 죽음이 있는데 그건 물건 버리기. 커다란 자루에 우리 집 책상 위, 거실 바닥, 지긋지긋한 주방 설거지거리 등 온갖 것들을 쓸어 담는 상상을 한다. 정말 커다란 자루여야 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책상과 바닥은 정말 깨끗하겠지?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 죽음과 가까울 거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몽땅 버리며 나를 통째로 버리는 듯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아이를 버릴까. 남편을 버릴까. 집을 버리고 떠날까. 온갖 버림에 대한 상상들 끝에는 결국 내가 나를 버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죽는 게 가장 간단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건 머릿속에서 실행될 뿐. 나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 울면서도 내 눈물이 베갯솜을 적셔 세균이 번식할까 걱정하는 사람이다. 이빨은 닦아야 하는데, 발도 생식기도 닦아야 하는데, 하며 이 사이에 끼어있을 오늘 먹은 치킨의 잔여물을 걱정한다. 안돼. 이대로 울다 잠들면 안 될 이유가 너무 많다.
한 시간 넘게 잠들지 않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안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느낌이 좋지 않아 조금아까 얼른 약을 먹었는데도 이 부정의 기운이 쉬 가라앉질 않는다. 다시 심장이 쿵쿵대고 눈물샘도 고장. 외로움과 서러움과 자책감과 억울함이 파도처럼 덮친다.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다. 아이가 열 살이 되도록 혼자 자길 무서워하는 것도, 내가 십 년째 아직까지 누군가의 엄마라는 사실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다 내 탓이다. 아니다. 저녁 먹고 나면 방문 닫고 들어가 혼자 드라마나 스마트폰을 보는 남편 때문이다. 나도, 나도 그럴 수 있어. 내일부턴 저녁상 물리고 나가버릴 거야. 나 찾지 마.
심장이 계속 쿵쿵거린다. 부정이 꼬리를 문다. 누가 잘라줬으면. 심장아 그만 나대렴. 퉁퉁 부운 심장을 쓰다듬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오늘 아이에게 잠자리 동화책으로 읽어준 <우리 동네 꾹꾹 도사>의 꾹꾹 도사가 그랬듯 꾹꾹 내 팔과 어깨를 꾹꾹 누른다. 나는 누가 와서 눌러주지 않을 테니까. 내가 눌러야지. 꾹꾹.
약을 지어준 의사가 그랬다. 약을 먹는 것은 그날 하루를 넘기는 일이라고. 몇 분 남지 않은 오늘 하루를 넘기기 위해. 일단은 꾹꾹. 나를 위해 꾹꾹.
202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