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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an 30. 2023

100개의 글, 100겹의 시간

오늘의 밥값 41 / 그 살아남음을 기념하며


브런치에 쓴 내 글이 100개를 넘어섰다. 100이라니, 그런 의미심장한 숫자에 도달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오늘은 아무 일도 없는데 글을 쓰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싶었다. 아니, 쓰는 건 자기 맘이지. 하지만 어디에 올린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저, 읽힐 가치가 있는가 하는 고민이었을 뿐. 우주 쓰레기, 디지털 쓰레기도 문제라는데 나 또한 감정쓰레기를 이 세상에 남기는 것은 아닌지.


나의 글은 일기와 에세이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상한 글이다. 메모장에 끄적이고 말면 될 것을 굳이 써 올리는 나도 이상하고, 읽어주거나 간혹 하트를 눌러주는 독자들도 고맙고 이상하다. 이 우주 어딘가에, 수십억 사람들 중에 다만 한 두 명이라도 진심으로 내 글을 좋아해 준다면 나는 그들 앞에서 춤이라도 출 것 같다. 얼마나 각별한 인연이란 말인가. 많고 많은 글들 중에서 나와 주파수가 맞는 글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나는 아니까. (사실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독자님들이 그 정도의 마음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옛다 하는 적선이었을지도? 무플방지위원회에서 다녀갔을는지도?)

하지만 100개의 글이 갖는 의미는 사실 ‘읽힘’에 있지 않다. 내가 오늘 기념하고 싶은 것은 ‘씀’에 있다. 지난 2년 9개월간 내가 지나온 여러 겹의 파도들을 나는 글로 지어내어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주로는 슬플 때 글을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살고 싶을 때 글을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아남았다.

여전히 슬프고 여기저기 아프지만 적어도 첫 글을 쓰려고 마음먹던 그 시절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건강하다(고 믿는다). 나 자신을 부끄러이 여기는 점은 여전히 같지만, 그래도 포장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의 연출의 결과가 아니다. ‘나였으면 하는 나’ 뒤에 숨고 싶지도 않다. 누가 뭐래건 이상하고 요상한 자세로 파도를 타고 또 타고 넘어지며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다. 부족해도 내 힘으로 왔다.


그 살아남음을 기념하려고 남기는 102번째 글, 그리고 41번째 오늘의 밥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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