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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n 14. 2023

서점의 기억

내 고향, 청솔서점


청솔서점. 이 이름을 기억해 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송림서적일지, 새림문고일지... 어쩌면 청솔서점도 여러 이름이 섞인 잘못된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렴풋 맞는 것 같다.


청솔서점은 내 기억 속 첫 서점은 아니다. 그보다 이전 초등학생 시절, 친구네 부모님이 서점을 해서 가끔 책을 사러 가곤 했다. 아빠와 친한 삼촌이 나를 무등 태워 가서 책을 선물로 사주었던 기억도 있다. 당시에는 문제집은 주로 문구점에서 샀고, 책은 학교에서 추천도서 목록을 주면 거기에 체크하여 구매할 수 있었기에 서점은 자주 가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반장이었고, 8명의 패거리와 요란법석을 떨며 동네를 놀러 다녔다. (내가 마지막으로 활달한 아이였던 시절이다.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나는 소심 그 자체다.) 우리 패거리 이름은 ‘마나빵(만화방을 웃기게 부른 것)’이었는데 수업시간에 서로 만화책을 돌려보다가 그렇게 되었다. 이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갔던 곳 중에 청솔서점이 있었다. 거기서 요즘에도 그런 것이 나올까 싶은 월간 만화잡지도 보고, 어른들이 보는 책 그러니까 야한 장면이 묘사된 책들도 쪼그려 앉아 몰래몰래 보았다. 사장님은 마음씨 좋고 친절한 분이셔서 우리의 여러 못된 짓들을 눈감아주셨다.


기억이 조금 섞이지만 반이 바뀌고 친구가 바뀌어도 나는 계속 그 서점엘 갔던 것 같다. 나중에는 아예 친구와 내가 사장님 대신 책을 팔고, 공책에 장부를 만들어 기록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아이들이다. 나는 심지어 책방 이사를 돕기까지 했다. 어지럽고 많은 책들에 둘러싸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서점 일꾼들과 자장면을 먹었고 얼마간의 용돈을 받았던 것 같다.


책을 좋아했어도 친구들과 서로 빌려주고 돌려보던 시절이었다. 책을 서점에서 직접 사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내 기억 속 서점은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놀이터였다. 서가와 서가가 만들어내는 좁은 책골목들을 비집고 다니며 신기한 책들을 발견하고 탐독하는 시간이자 공간. 마음씨 좋은 사장님 가족 덕분에 만들어진 기억이다.


어쩌면 그 기억들이 강렬하여 지금까지도 이렇게 서점을 탐방하고 탐험하고 탐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물성이 좋아 자꾸자꾸 사게 되듯, 서점이라는 공간 자체가 좋아서 자꾸자꾸 그곳을 찾게 된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게는 서점이 곧 자아의 고향이라 말할 수 있겠다.


다마스(소형 트럭)에 책을 싣고 다니는 이동식 서점 ‘북다마스’의 운영자가 쓴 책 <이토록 작은 세계로도(김예진 저)>를 읽다가 옛 서점의 기억을 떠올렸다. 내 정서적 고향인 그 시절 그 서점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한참을 입으로 주억거리다가 겨우 ‘청솔서점’이란 기억 속 조각을 발견했다. 잊어버릴세라 메모장을 열어 주운 기억들을 부려놓는다. 다시는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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