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택배를 기다리며

by 수달씨


며칠째 오지 않는 택배를 기다리다가, 마음먹고 물건을 주문한 업체의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건을 받지 못하였으니 환불 조치를 해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월요일 아침의 커피숍, 아이스 라테 한 잔을 들이켜고, 거대한 빵을 꿀꺽 삼키고 겨우 해낸 일이다. 이제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 나는 환불을 받지 못해도 이걸 해냈다는 것에 만족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지독히도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누구에게는 쉬운 일이 누구에게는 어렵다. 또는 이런 일은 쉽게 해내는데 저런 일은 영 되질 않는다. 내게는 위와 같은 일 - 하자가 있는 물건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늦게 납품되는 상황에서 재촉해야 하거나 고객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적절하게 거절해 내는 일들이 어렵다. 차라리 얼굴을 보고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화로 그런 것들을 말하다니 생각만으로 가슴이 벌렁거린다.


가끔 이런 꿈을 꾼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따박따박 항의하는 꿈. 나는 말이 너무나 청산유수로 술술 잘 나와서 이게 꿈인지도 모른다. 원래의 나, 그러니까 어릴 적의 나는 말을 참 잘하는 아이였다. 논리로는 지지 않는 쪽이었다. (물론 말로 안될 때는 남자아이 정강이를 걷어차거나 오르간을 넘어뜨리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쪽이기도 했다.) 이십 대 때는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여 진압을 나온 경찰들에게 말로 때리는 일에 꽤나 통쾌함을 느꼈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조그만 여자애가 참으로 시끄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릴 때 타던 놀이기구를 어른이 되어 타지 못하게 되듯이 이제는 싸우는 것이 무섭다. 정글짐 꼭대기까지 두 발로 성큼성큼 올라가던 내가 아니다. 땅에서 1미터만 떠도 발발 떨릴걸. 어째서 사는 건 점점 익숙해지거나 견딜 만 해 지지 않는 걸까. 모를 노릇이다. 이 나이를 먹고도 겁쟁이라니.


하루아침에 재난으로, 혹은 인재로, 혹은 사고로, 혹은 폭력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일상을 잃게 된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원하던 원치 않던, 투사가 되어 거대한 것들과 싸우고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바꾸어보려고, 회복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기운은 어디서 나는 것일까.


그런 싸움에 비하면 물건을 환불받는 것 같은 정도의 싸움은 너무 우스운 것이라서 어떻게 보면 그런 힘은 조금쯤 아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싸우지 못하는 나에 대한 변명거리를 만들어본다. 하지만, 무사히 환불을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면 그 작은 승리에 조금은 도취되어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까.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결국은 싸움 그 자체보다, 싸움 혹은 싸우지 않음을 통해 무얼 얻을 거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평화주의자이든, 겁쟁이로 살든, 쌈닭으로 살든 모두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방향으로 향하면 좋겠다. 평화를 얻기 위한 싸움도 어딘가엔 분명 존재하니까. 나는 나의 작은 싸움들을 아껴 진짜 평화를 위한 싸움에 쓰고 싶은 사람. 그런 나의 쓰임이 오기를 고대한다. 그전까진 겁쟁이인 나도 미워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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