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당 일기 31 / 그러니 힘든 건 당신 탓이 아니다
비가 온종일, 몇 날 며칠 내렸다 그쳤다를 하며 기후 위기를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 그래도 잠깐씩 하늘을 보여줄 때가 있어, 드디어 마당엘 나가보기로 했다.
지금 우리 마당은 정글 그 자체. 사람 키만큼 자란 잡초와 개망초 군단이 위풍당당하게 마당을 점령하고 있다. 일단 한 가지 잡초가 땅을 점령하고 나면 대체로 다른 종류들은 힘을 못쓰는 모양이다. 지금 있는 것들은 미관상 크게 나쁘지 않고(?) 해로운 종류가 아니어서 그냥저냥 내버려 두었다. 예초기 담당인 남편이 요즘 너무 바빠하기도 하고, 비도 계속 오고.
문제는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는데 토마토 밭으로 갈 수가 없다는 것. 그리하여 잠시 비가 그친 아침, 고무장화를 신고 기다란 전정가위를 들고 마당에 나섰다. 딱 토마토 밭까지 가는 길만 베어내야지.
가위가 서걱서걱 소릴 내며 시원하게 잡초를 쓰러트린다. 몸이 땀에 흠뻑 젖는 느낌도 왠지 시원하다. 일이십 분쯤 기분 좋게 가위질을 하며 나아가니 어느새 토마토 밭에 도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까이서 보니 수확할 수 있는 토마토는 얼마 없었다. 멀리서 봤을 때 빨갛게 익어 보였던 토마토는 죄다 벌레가 먼저 먹었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알도 작고 몇 개 달리지도 않았다. 토마토 텃밭농사 몇 년 만에 이런 적은 처음이다. 하긴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노지 토마토가 버텨낼 리가 없지. 나는 농사에 손을 놓고 대충 내버려 두었던 시간을 잊어버리고, 비와 날씨 탓을 해버리기로 했다. 그러니 마음이 썩 후련하다.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무기력해지기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되기도 한다. 때로는 내 탓을 하는 것보다 다른 이유를 찾는 것도 마음 돌봄에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도리어 삶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흐름에 맡기고, 때로 내버려 두고, 내 탓보다 세상 탓을 해버리기.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이런 무덥고 습한 여름을 살아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니 다 괜찮다. 힘든 건 당신 탓이 아니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