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당 일기 32
비는 그쳤지만 연일 폭염이다. 그 어느 해보다 집 안에서 에어컨 틀고 숨어있는 날이 많아진 여름. 햇빛도 무섭고 모기도 무섭고 해서 마당은 창문 너머 바라보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도 지난 주말 땀범벅이 되어가며 남편은 예초기로, 나는 전정가위로 잡초를 한차례 제거했다. 큰 숙제를 치른 마당은 한결 보기가 나아졌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한 수영장도 설치해 주고. 하늘, 구름, 잠자리, 개구리, 수영장... 마당은 이제 완연한 여름이다. (망한 농사는 일찍 마음에 묻었다. 한 해쯤 농사 안 하면 어때.)
하루 두어 번은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모두 연다. 뜨거운 공기가 습기를 제법 날려 보내 주어서, 의외로 쾌적하다. 나는 덥더라도 이 상태, 이 시간을 좋아한다. 약간 땀을 흘렸을 때의 개운함, 마당과 하늘을 통째로 집안으로 들이는 느낌이 좋다. 현관문까지 활짝 열고 차가운 거실 바닥에 대 자로 드러눕는다. 천장의 서까래와 거미줄과 오래되어 움푹 파인 홈들을 세어본다. 등으론 서늘한 기운, 발과 이마를 간지럽히는 선풍기 바람. 잔잔하게 틀어두는 여름의 플레이리스트.*
잠깐이나마 온갖 걱정이 사라지는 착각과 졸음이 밀려오면 나는 이 여름을 잘 맞이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여름을 한껏 껴안아주고 있구나. 지나친 더위와 추위는 우리에게 무기력과 함께 순응하는 법을 가르친다. 무엇이든지 극복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납작 눕거나 엎드려서 그저 느껴보라고 말한다. 요가 수업의 등을 대고 눕는 마지막 동작처럼. 그저 숨을, 공기를, 존재 자체를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깜빡 졸다 깨어나면 언제나 현실은 그대로지만. 다시 창문을 모두 닫고, 에어컨을 켜고, 밀린 설거지를 위해 고무장갑을 끼겠지만. 잠시의 오롯한 나였던 시간은 나를 살아있게 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여름의 맛, 온전한 살아있음의 맛을 기억하며 다음으로 나아간다.
* 주로 최정윤의 <사라져>를 시작으로, 브로콜리 너마저, 언니네 이발관, 가을방학으로 이어지는 리스트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