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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l 28. 2023

여행, 서점, 그리고 나의 책


남해에 여행을 왔는데 남해의 한 카페이자 소품샵이자 서점인 공간에서 나의 책을 입고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신기한 인연이기도 하고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터미널에 가기 전에 ‘이동’이라는 낯선 동네에 내렸다. (남해 버스는 정류장 표시가 명확하지 않고 언제 내려야 할지 몰라서 조마조마하다. 뚜벅이들에게 친절한 여행지는 아닌 듯하다.)


오픈 시간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았는데 달리 시간을 보낼 곳이 없어서 조그만 동네를 하염없이 돌았다. 편의점에 잠시 앉아 바나나우유도 하나 사 먹고. 농협 은행에 들어가 눈치 보며 앉아있기도 했다. 시골 농협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상대하느라 분주한데 그 모습이 괜히 정겹고 귀엽다. 하지만 역시 눈치가 보여 책 몇 장 읽다가 다시 나왔다. 조금 더 걸으니 주민센터가 있고, 그 옆에 주민들을 위한 다목적 휴게공간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발견해 들어왔다. 이렇게 좋은 곳을 왜 진즉 보지 못했지? 화장실도 가고, 정수기 물도 마시고,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편히 앉아 다시 책을 꺼내 몇 장 읽는다. 이 독립출판물은 표지도 제목도 매력적이고 초반 몇 페이지의 글이 상당히 좋아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에 비해 진도가 잘 나가지지 않는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폰트 때문일까? 추상적인 문체 때문일까? 여행의 피로가 내려앉은 나의 상태 때문일지도. 이번 여행에 두 권의 책을 가져왔는데 이 한 권도 절반도 채 읽지 못했다. 나머지 한 권은 소설책인데 새 책인 상태 그대로 다시 가져가게 될 것이다.


이번 여행 동안 글을 꽤 많이 썼다. 전엔 많아야 하루에 한 편 정도 쓰거나 브런치에 올리곤 했는데. 하루에 여러 편을 올리기가 좀 부담스러워 메모장에 묵혀두었다. 묵혀둔 글은 나중에 보면 왠지 시의성이 떨어져 올리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읽는 독자들은 시의성과 관련을 크게 못 느끼겠지만 말이다. 오직 나의 세계에서의 시의성일 뿐이다.)


이제 11시가 다 되었다. 서점이 문을 열 시간이다. 가서 뭐라고 말할 거지? “<오늘의 밥값>이랑 <어쩌다 마당 일기> 입고하셨죠? 제가 그 책 쓴 사람이에요.” 그 어색한 문장을 지금까지 서너 번, 내 책이 입고된 서점에 가서 말해왔다. 나는 그런 면에서 쑥스러움을 아주 많이 타는 사람은 아니다. 오늘도 다소 뻘쭘하게 서서 책과 소품을 둘러보고, 차를 한 잔 마시고, 계산하는 중에 그러니까 나가기 직전에 위 문장을 말할 것이다. 그때부턴 주인에게 뻘쭘함이 옮겨가겠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웃고,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만나기 어렵겠지만 다시 볼 것처럼 작별인사를 나누겠지.


자, 이제 내 책이 있을 공간으로 가자. 나는 이 일이, 이 시간이 몹시 즐겁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여행지에서 서점을 찾아가는 걸 좋아하는 내가, 여행을 하면서 내 책이 있는 공간을 만나게 되는 일이 드디어 벌어진 것이다. 살아있길 잘했다. 나 자신, 기특하다.


2023/07/25



남해의 카페이자 소품샵이자 서점 <시간의 흐름>. 내 책이 입고된 걸 보러 갔다가 귀여운 걸 잔뜩 사고 말았다. 마지막 사진은 시간의 흐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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