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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l 31. 2023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모두 소중해


너무 귀여운 그림을 그리는 나와 세상 우울한 글을 쓰는 나는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새하얀 바탕에 검은 선으로 그리고 마는 나는 또 어떤 사람일까.

두 권의 책을 독립출판물로 만들었다. 한 권은 굴을 파고 또 파서 내밀한 우울을 끄집어내는 내용이라 읽은 독자마다 ‘힘들었다’는 말을 들었고, 다른 한 권은 ‘따뜻하고 재밌게 읽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두 권의 책에 실린 각각의 글들은 다른 시기에 쓰인 것이 아니다. 지난 3년여간 메모장에 썼던 글들을 두 가지 주제로 추린 것뿐이다. (하나는 ‘우울과 생존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었고 다른 하나는 ‘마당 일기’라는 제목이 붙었다.)


나는 때로 이쪽 끝에 섰다가도 다음날 다른 쪽 끝까지 가곤 한다. 어제 좋아했던 일을 오늘 싫어하기도 하고, 어제까지 아무 관심 없던 일에 대해 하루 만에 ‘덕질’을 시작하기도.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 매일 다른 얼굴로 하루를 시작하는 주인공처럼 영 다른 ’나‘들을 매일이고 마주한다. 수많은 ’나‘들이 서로 자기주장을 할 때면 누구 손을 들어줘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워 이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최근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이때 만나는 ’나‘도 새롭고 나쁘지 않다. 의외로 대범하고 간이 큰 녀석인데 주로 여행을 할 때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나의 책을 만들 때에도 이 녀석이 한몫을 해 주었다. 겨울에 한 권, 여름에 한 권 내리 두 권의 책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예전에는 1번 수진이와 2번 수진이, 그리고 그 밖의 수진이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1번 수진이가 무엇을 결정하려고 하면 2번 수진이는 항상 발목을 잡고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이었다. 그러면 3번 수진이가 2번 수진이를 말리고, 그다음 4번 수진이가... 이런 식으로 확장되는 거다.

결정이 늦어지는 게 결국 2번 수진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젠가부터 1번이 주장하는 것 위주로 들어주곤 했는데, 알고 보니 1번 수진이도 하나가 아니었던 거다.


이렇게 많고 다른 ’나‘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 찬찬히 들어주고, 돌아가면서 한 번씩 역할을 하게 해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누구 하나 배제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조금 느리더라도, 혹은 어떤 녀석이 조급하게 달려 나와도 살살 안아주면서 그렇게 가보려고 한다. 그 모든 수진이가 결국 나란 것을 인정하며 소중히 여겨보려 한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른 사람일지, 같은 사람일지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다 괜찮다. 소중히 대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 소중하다는 마음. 그들의 삶이, 그들의 서투름이, 그들 안에서 투쟁하고 살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그들이. 예쁘고 소중해 안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sudal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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