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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ug 16. 2023

그대는 누군가에겐 봄, 누군가에겐 기억


어젯밤에는 그리운 사람들이 꿈에 잔뜩 나왔다. 시대별로 다양하게. 하도 포근하고 좋아서 깨고 싶지 않아 아침 내내 침대 위를 뒹굴뒹굴했다. 좋은 느낌이라 다행이다. 실제로 만나지 못해도 이만하면 좋은 느낌.

꿈에 그리운 사람들이 나오면 여운이 길어서 오전 내내 생각할 때도 있다. 나는 원래 이토록 사람을 많이 좋아했는데. 사람 없이는 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고, 눈을 뜨니 그들은 이미 내 앞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른 것을 본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며, 거실에 있는 식물들에게 인사를 한다. 밤새 잘 잤니 하며. 항상 먼저 일어나는 아이에게 인사를 한다. 잘 잤니,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자. 커피를 내려 현관문을 열고 그 앞에 앉아 마당에게, 하늘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도 햇살을 보여줘서 고마워. 풀냄새를 맡으면서 인사를 한다. 싱그러운 공기를 보내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 나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도 기분 좋게 시작하니 좋구나. 잘했어.


그리운 사람들이 보내는 그리운 신호가 이제 그렇게 싫지 않은 건, 지금에 제법 만족하게 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가슴에 뻥 뚫려있던 커다란 구멍도 점점 작아지고 줄어들어 이제 미세한 감각으로만 남아있다. 사람은 이렇게 변하고 달라질 수 있다. 한번 달라져 보면 그 믿음으로 계속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들려오는 이소라 언니의 <신청곡> 가사를 음미한다. 그대는 누군가에겐 봄. 누군가에겐 기억. (이런 가사가 아닌데 이렇게 들렸다.)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 일까 생각해 본다. 살면서 어떤 모습으로 떠오를까. 가끔 꿈에 나타나기도 할까. 아무쪼록 나쁜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은데.


오늘 꿈에 등장한, 시대별로 다양한 그들을 다른 꿈속에서 다시 만난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잔뜩 있다. 내가 너무 상처 주지는 않았니. 못나지는 않았니. 그랬다면 미안해. 그래도 너희들을 참 사랑했어. 사랑이 많아서 그랬어. 사랑받고 싶어서 그랬어. 이제는 괜찮아. 이제는 너희가 없어도 나를 사랑할 수 있어. 그래도 고마워. 그 시절 내 옆에 있어줘서. 어디서든 잘 살아.

손을 붙잡고 끝이 안 날 인사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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