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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Sep 20. 2023

오늘 하루는 그렇게, 내일은 모르니까

비 오는 아침, 버스를 타고 나왔다. 달리 약속이나 갈 곳은 없는데 이런 날은 우울해지기 쉬워서 무작정 나오곤 한다. 버스는 신형 전기버스로 바뀐 뒤로 좌석이 많이 줄어들었다. 많은 승객들이 먼 거리를 서서 간다. 비 오는 날은 운전기사도 예민해지나 보다. 모두가 조금씩 피로해 보인다.


환절기 어김없이 비염이 찾아왔다. 눈과 코가 하루종일 가렵고 연신 재채기에 콧물. 어제 병원을 가 약을 지어왔고, 다시 약을 먹기 위해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한다. 아침 안 먹을 때가 좋았는데. 일주일만 참아야지.


가을인데 자꾸만 비가 와서 속상하다. 빨래를 하늘 아래 보송보송 말리고 싶다. 그런 가을을 기다렸는데 계속 비 또 비. 나만 느끼는 우울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 머리 위로 회색 구름이 하나씩 떠있는 것만 같다. 나는 비가 싫다. 좋아해 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데, 오늘은 이런 날이라서 이 기분 그대로 적어 내려가 본다. 적지 않고 그대로 두면 내 마음 어딘가에 이끼처럼 말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잔뜩 회색인 도시로 진입했다. 바닥도 회색, 건물도 회색, 하늘도 회색이다. 오늘은 백화점에 가서 전에 봤던 와인색 카디건을 입어볼 것이다. 붉디붉은 옷이 이 회색의 기운을 가려줄까. 오늘도 사지 못하고 내려놓겠지만, 좋은 옷을 입어보는 것은 나의 비밀스러운 즐거움이니까. 부드러운 붉음의 기운으로 마음을 이불 덮듯 덮어주고 싶다.


오늘 하루는 그렇게. 내일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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