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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Sep 19. 2023

꽃무늬 가방과 요가


글을 쓰지 않은지 오래됐다. 그래도 쫓기거나 하는 느낌은 없어서 그냥 그 채로 내버려 두었다. 그냥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느낌의 일상도 나쁘지 않다.


아이 방학기간 동안 쉬었던 요가를 다시 등록하여 다니는 중이다.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초급자 주제에 숙련자 코스를 들었더니 온몸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른다. 운동으로 요가를 다닌다고 하면 그건 운동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만날 때가 많은데 절대 사실이 아니다. 도구나 기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근육과 뼈를 이용해 몸의 형태를 만들고 지탱해야 한다. 소박하고도 간명하고도 제대로 힘이 들어가는 운동이다. 오직 자기의 힘과 에너지 만으로 버텨내는 시간. 특히 ‘머리서기’ 동작을 할 때면 ‘아이고’ 하며 속으로 곡소리를 낸다. 한바탕 땀을 쭉 빼고 나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가 절로 나온다.


요가원은 집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이지만 갈아타야 할 때도 있고,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왕복 2시간은 걸리기도 한다. 어찌 보면 비효율적인 시간 배분이 아닐 수 없다. 들어가는 시간과 돈과 수고가 아까워, 집에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집에서 일하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람과 만나고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라 요가원에 다니는 것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지난번 등록 때 고민하다가 6개월 치를 끊었는데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니는 이 길이 싫지 않다. 아니, 무척 좋다.


요가를 다닐 때 기분 좋으려고 모처럼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꽃무늬 에코백도 샀다. 뭔가를 살 때마다 찾아오는 죄책감도 이제는 좀 놓아주고 싶다. 팔랑팔랑 슬리퍼와 운동복 차림으로 다니는 이 길이 나에게 조금 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길 바란다. 그렇게 보내고 6개월 뒤의 나에게 어떤 종류의 칭찬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남겨보는 오늘의 밥값.*



*<오늘의 밥값> 연재는 마무리했지만 여전히 자주, 이런 문구로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하루치 밥값을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습관이 남아있어서 어쩔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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