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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Sep 30. 2023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죽음이 어쩌면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무섭고 또 무섭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최소한의 삶 최선의 삶>(제롬 브리요)에서 누누이 말하듯 현재를 온전히 살 뿐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나는 아직 그 책에서 설파하는 ‘단순한 삶’을 다 이해하거나 체득한 사람은 아니라서 언제나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죽음이다. 나의 죽음과 가까운 이의 죽음, 모르는 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모두 포함한 죽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죽음은 상상이나 습관적인 망상 속에만 있지 않고 실체적으로 다가온다. 마음이 척박할 때에는 이 실체적 두려움을 이겨내기가 어려워 조금 더 약에 의존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삶이란 마치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아 떠나는 코끼리의 여정과 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덜 무서울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코끼리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는 거라고. 도착지는 조금씩 다른 모습일지라도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거라면 조금 덜 외로울 것도 같다. 도착한 곳에서 물 한 모금 먹고 누워서 쉴 수 있다면. 그곳이 별이 뜨는 하늘 아래라면.


오늘, 추석이라는 이름답게 밝고 커다랗고 동그란 달이 떴다. 마치 유빙들처럼 하늘을 덮고 있는 둥실둥실한 구름들 사이로 그 빛나는 얼굴을 환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마당에 서서 한 가지 (나를 위한) 소원을 빌었다가 이내 지우고, 다른 (이를 위한) 소원을 빌었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두 번째 소원마저 지우고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우주의 뜻대로 하시라“고. 그 뜻에 따르겠노라고. 한 번도 빌어본 적 없는, 나답지 않은 소원을 올려 보냈다.


그것은 진심이다. 우주의 뜻에 따른다는 것. 종교도 믿는 신도 없는 내가 우러를 곳은 이제 우주와 나를 둘러싼 자연밖에 없다. 나와 내 가족의 안녕도, 나의 사상과 이념도 결국은 그의 뜻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 아래에서 한 톨 먼지조차 되지 못하는 나의 생이지만 최대한 깨끗하게 쓸고 털고 닦으며 가고 싶다. 지독한 자연주의자도, 신실한 미니멀리스트도, 대단한 이타주의자도 되지 못한 나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고 싶다.


죽을 자리를 향해 가는 여정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별 하나를 오롯이 따라갈 수 있다면 좋겠다. 아무 욕심 남기지 않고 그 자리 아래 누울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아무도 모르게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무도 슬퍼하는 이 없게 죽게 하소서

아무도 모르게 이곳을 떠나고자 하니

내가 누운 자리에 돌을 세우지 마소서“

- 알렉산더 포프, <고독의 송가> 중에서 *



* <최소한의 삶  최선의 삶>, 제롬 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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