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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Oct 10. 2023

연휴 끝, 다시 시동 걸기


징검다리를 건너듯 연휴를 다 보내고 뚱뚱하고 무거워진 몸으로 오늘을 맞았다. 아이는 이 지구 온난화 시대에 학교는 뭐 하러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툴툴거리며 학교엘 갔다. 나도 받아줄 여력이 없어, 힘없이 걸어가는 등에다 다소 뾰족한 ‘잘 다녀와’ 인사를 박았다.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머리를 감고, 보내주기로 한 메일을 작성하는 사이에 파란 하늘이 빼꼼 나왔다. 하루종일 흐렸으면 내도록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다.


메일을 보내는 도중에 파일 정리를 좀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러버렸다. 요가원 가는 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대충 마무리하고, 방마다 커튼을 닫고 부랴부랴 정류장에 나왔다. 알맞게 도착한 버스. 이 버스를 타고 가면 요가 시작 시간에 10분 정도 늦겠지만 오늘은 늦더라도 가고 싶다. 민폐인 걸 알지만 자주 있는 일 아니니 한 번만 봐주세요.


파랗고 말갛게 갠 하늘. 오늘은 그늘 밑이 쌀쌀해서 햇빛을 찾아 이동하게 되는 날이다. 정류장에 10분 정도 서있는 동안 손이 금세 차가워진다. 잔뜩 쉬고 났더니 가을이 두 걸음 더 성큼 다가왔다. (내 책 <어쩌다 마당 일기>를 읽은 아들내미는 우리 집은 일 년의 반이 겨울이라며, 벌써 겨울이 왔다며 책 속의 문장을 매일같이 읊는다.)

산에도 거리에도 아직 단풍조차 익지 않았는데 계절이 요술을 부린다. 아이 말대로 지구가 이렇게 이상해지는데 학교도 공부도 다 소용없는 것일까.



그래도, 지구가 아파하고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생각해 본다.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아침 출근길에 올랐을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 하루 잘 보내고 있을까. 연휴 내내 배가 터지도록 먹었으니 오늘 하루쯤은 굶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도 어딘가에 또 있겠지.

모두가 다 다르지만 어딘가 서로 닮은 우리들이 지구 위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연휴를 쉬어간 직장인이든, 빨간 날도 가게 문을 열어야만 하는 자영업자든, 삼시세끼 밥을 차리느라 고생한 주부든, 다시 오늘의 시동을 걸고 달려가는 건 똑같다.

마을버스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우리는 다들 어디로 가고 있을까.


버스 창가에 비친 햇살에 한쪽 볼이 달구어졌다. 차가운 손을 달궈진 볼에 대본다. 손으로 피곤한 눈두덩이와 볼을 쓰다듬는다. 쓰담쓰담. 서로를 어루만지며 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 지구와 그 안의 모든 생명에게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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