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달씨 Nov 08. 2023

3인가구 월 200만 원, 가능할까?


가끔 못 지킬 때도 있지만 대체로 가계부 앱을 써오고 있다. 꽤 오래된 습관이다. 습관이라고 하기에는, 며칠 혹은 일주일치씩 몰아서 쓰고 지치면 건너뛸 때가 많았는데 지난달부터는 정말 습관처럼 거의 매일 쓴다. 매일 쓰게 된 건 마음먹고 절약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옷이며 소품을 싸지른(?) 뒤 더 이상 이렇게는 살지 말자는 심정이 되었다. 할 만큼 했다 싶었다. 이제는 진짜 현실을 살아 보자고.


목수 남편이 벌어오는 생활비와,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나의 디자인 수입으로 우리 세 식구가 살아간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데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는 편임에도 어째서인지 식비와 외식비를 합치면 월에 칠팔십만 원이 훌쩍 들곤 했다. (남들한테 말하면 엄청 적게 쓰는 것이라고들 한다.) 거기에 생필품 비용과 공과금, 주유비, 각종 보험료, 경조사 비용, 최소한의 적금들, 가끔 캠핑을 가거나 손님을 초대하는 비용, 아이의 태권도 학원비 등을 더하면 한 달 생활비가 나오는데 절약에 들어가기 전에는 다해서 평균 250만 원 정도가 되었다. 남편과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비용은 제외하고 세 식구가 살아가는 순수 비용이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무시무시한 대출금 상환이 시작된 것이다. 전에 없던 80만 원가량의 소비가 매달 발생하게 된 것. 수입은 늘지 않고 매달 불안정한데, 고정 지출이 늘어나는 일은 공포였다. 나는 대출 상환이 시작되던 즈음 사실상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이 돈을 다 갚지도 못하고 죽어버릴지도 몰라, 내 아이에게 빚만 물려주고 떠나는 부모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등등 온갖 생각으로 머리를 뜯다가 내린 결론이 ‘지출을 현저히 줄이자!’였다. 수입을 늘릴 수 없다면 확고하게 지출을 줄여보는 거야.


그리하여 3인가구 월 200만 원으로 소비의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소비를 줄이는 방법은 달리 없었다. 그저 사고 싶은 것을 사지 않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는 것 말고는. 기왕에 건강관리도 하고 있는 마당이니 우선 나부터 외식과 밀가루 음식과 빵과 간식과 커피숍을 끊었다. 그 좋아하는 동네 카페에서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건 많이 힘들었지만(또 카페 사장님께 미안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꽤 많은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냉장고를 최대한 파먹었다. 얼마 전에는 냉동실 깊숙이 묻혀있던 얼린 생선들까지 발굴해 구워 먹었다. 식탁 위는 점점 소박해져만 갔다.


그다음에 옷과 소품에 대한 소비를 끊고, 미안하지만 책 소비마저 줄였다. 이제 겨울이니 난방비용이 더 들어가겠지만 캠핑을 가지 않으면 서로 상쇄될 것이다.


그렇게 한 달 살아보니, 가계부에 20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의 소비가 기록되었다. 이 정도면 선방했다. 식비 지출도 55만원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200만 원 이하로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하고 자신감마저 생겼다. 나, 생각보다 잘 참는 사람이었어.


물론 한참을 조이고 나면 어느 순간 지나치게 풀려버리는 때가 온다. 어쩌면 지금이 그때일지 모르는 게, 심한 감기에 걸려버려서 식단조절은 멈추고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먹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왠지 쉽게 ‘조임’ 모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절약의 뿌듯함을 알아버렸으니까. 하루하루 꼭 쓸 곳에만 돈을 쓰고, 그것을 매일 가계부에 기록하는 일은 그렇게 비참하지 않고 생각보다 유쾌한 과정이었다. 소비를 통해 얻는 즐거움보다 어쩌면 더 큰 즐거움, 혹은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자 가계부에는 2000원의 지출이 기록됐다. 창문에 방풍용 비닐을 붙이기 위한 테이프 가격이다. 점심으로 먹은 편의점 도시락 지출 5800원은 다른 종류의 가계부 앱에 기록했다. (공동생활비와 개인생활비를 따로 기록한다.) 늘 월 초반에는 지난달 미뤘던 소비들이 떠밀려와 지출이 많게 기록되곤 한다. 그래도 오늘은 선방. 이번 감기만 다 나으면 다시 건강한 식사와 절약생활로 돌아가야지.

현실감각 없고 씀씀이 조절을 잘 못하는 나지만,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작심 한 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픔이 슬픔이 되지 않으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