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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Nov 09. 2023

결국 나를 구원하는 건 나 자신이니까

점심을 먹고 체한 기운이 살짝 진정됐나 보다. 저녁을 거른 채로 밤 아홉 시 반이 넘어가려는 지금 이 시간엔 무얼 먹으면 좋을까. 읽고 있는 책에는 콩국수니 팥빙수니 감자전 같은 여름 음식들이 언급되는데 그것들은 별로 당기지 않는다.


사실 나의 허기짐은 다른 데서 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나의 한 친구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글을 써 펴낸 책이다. 친구들이 힘을 합쳐 쓴 책이니 당연하게도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힘들 때 전화 걸 수 있는 친구, 밤에 외롭다 하면 달려와주는 친구, 아프면 기꺼이 챙겨주는 친구, 냄새나는 선술집에서도 즐거운 친구, 이런 친구, 저런 친구. 그리고 나는 배가 고파졌다. 아직도 나에게는 ‘친구’라는 단어가 어떤 종류의 버튼임에 분명하다.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여차저차하여 이렇게 시골집에서 홀로 숨죽이며 살게 된 사연은 이제 그다지 서럽거나 억울하지는 않다. 혼자된 시간이 많아지며 자연스레 나는 나의 가족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존재론적인 의미들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대화가 고플 때나 사소한 고민거리가 있을 때 언니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남편이 침대 옆에 눕기를 기다렸다가 조잘조잘 떠들면 특별한 해답이 없이도 곧 진정이 되곤 한다. 가끔은 아홉 살짜리 아이에게도 “엄마는 이런 고민이 있어.” 하고 털어놓기도 한다. 가족의 새로운 쓸모를 발견하는 중이다.


지금은 거의 먹고 있지 않지만, 간혹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불끈 올라오면 병원에서 지어온 상비약을 먹으면 된다. 그것은 참으로 안심되는 일이다. 밤에 여러 생각으로 잠을 방해받을 때에도 취침약이 있으니 걱정 없다.


한편, ’친구‘라는 단어와 반드시 한 몸처럼 붙어 있는 것이 ’술‘이 아닐까 한다. 애초에 술을 거의 잘 먹지 못하는 나는 친구를 깊이 사귀기에 적절치 못한 존재인 걸까.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술에 의지하고, 술에 관계를 부어 마시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날이 내게 진짜 친구가 생기는 날일까? 아마 그런 날은 평생 오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다가, 저 사람들은 매일같이 저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퍼먹는데 왜 매일같이 외롭다고 할까 궁금했었다. 실은 궁금이 아니라 질투였던 거고, 나는 그즈음 결국 폭주해서 신경정신과를 찾았고 첫 우울증 약을 짓게 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흘러 나는 거의안정을 찾아가는 중이고 약도 쉬고 있지만, 여전히 어떤 지점에서 ’친구‘는 버튼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친구를 간절히 얻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신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공짜로 내려줄 테니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친구보다 역시 현재는 돈이 가장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돈에 절실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고 그런 내가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하늘은 그런 것을 절대로 거저 내려주지 않을 거란걸. 내게 필요한 건 나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걸. 나를 구원할 힘도 결국 내 안에 있단 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잘 읽고 있는 <도시의 계절>, 김진리 안예슬 엄태인 허무해 지음 (허스토리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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