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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Nov 17. 2023

지금의 나는 지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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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렇다. 대체 어디서 에너지가 나서 그렇게나 움직일 수 있었던 걸까. 언제 어느 시절을 떠올려봐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움직일 수가 없다. 잠옷에서, 침대에서, 집에서 나가기가 전보다 어려워졌다. 몸이 자꾸 아팠기도 하다.


그런데도 오늘 추위를 박차고 나왔다. 하늘이 너무 파래서, 공기가 차갑고 신선해서,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침부터 플레이되는 모든 음악들*이 가을을 즐기라고 말한다. 잠자고 있던 움직임 세포가 눈을 뜨려고 하는 것일까.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이라서 무리하지 않고 서울 가는 13-2번 버스에 올라탔다. 남한산성 입구를 지나고 검단산 옆을 지나는 동안 가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을여행은 역시 버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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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몸이 많이 아팠다. 한 달쯤 전 허리를 다친 뒤, 허리가 나을만하니 몸살감기가 찾아왔고 몸살이 나을만하니 두통이 찾아왔고 두통이 나을 때쯤 생리통이. 너무 아프고, 아픈 게 억울해서 집에 있는 약이란 약은 다 찾아 먹고, 마음까지 안 좋아져서 우울약도 먹었다.


몸이 정상 상태인 게 언제였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시 회복되어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겨울은 와버렸고 집은 너무 춥다. 그동안 지난 여러 번의 겨울을 어떻게 버텼나 싶게 새삼스럽도록 춥다. 봄이 오기 전까지 나는 꽤나 오래 아플 것만 같다.


기분이라도 내고 싶어서 집 거실에 이른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두고 하루종일 재즈 캐럴을 틀어놓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는 겨울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신의 배려인 걸까.


아프다는 말 말고는 적을 게 없을 것 같아서 글을 쓰지 않았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요즘은 그저 어떻게 돈을 벌어 빚을 갚고 겨울을 나나 그 궁리뿐이다.


그래도 열흘쯤 전에 버스에서 써둔 위의 글 한 토막을 보니 기운이 아주 없진 않은 모양이다. 실은 컨디션만 회복하면 어디든 여행을 가고 싶다. 깊은 산속에 마련된 휴양림도 좋고, 도심이나 지방의 호텔이어도 좋을 것 같다. 아직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아이는 자꾸만 겨울 한라산을 정상을 가보고 싶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추운데 거길 가겠다고? 기가 찰 노릇이지만 역시나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좋은 일. 이 겨울 무엇이든 하며 살아내 보자. 내년에는 한 살씩 더 먹어 지금보다 더 늙고 병들고 아플지 모르니. 지금의 나는 지금 뿐이니.




*가령, 스텔라장과 폴킴이 부른 <보통날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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