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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Nov 27. 2023

나름대로 포근

월요일 오전은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 않으려고 한다. 주말은 아이와, 혹은 가족과 함께 보내며 또 다른 노동을 했으니까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결국 또 일이다. 주말 동안 쌓아놓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해 널고, 청소기를 돌린다. 한 주의 시작을 더러운 공간에서 시작하고 싶지 않으니까.


거실 테이블에 앉아 한 숨 돌린다는 것이,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비몽사몽 일어나 점심을 차려먹는다. 한동안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는데, 추워지고부터는 빵을 곁들인 수프를 주로 먹는다.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요즘은 외식도 많이 했다. 바짝 조여서 살기에는 겨울은 너무 춥다.


거실에 간단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고 매일 재즈 캐럴을 틀어놓는다. 왜 캐럴을 들으면 따뜻해지는 걸까. 난 종교도 없는데. 아무튼 크리스마스가 없다면, 캐럴이 없다면 겨울은 정말로 살기에 팍팍한 날들일 것이다. 도시의 온갖 반짝거리는 것들을 보러 조만간 아이와 서울 여행을 가야겠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투덜거리며 11월 내내 집을 겨울 모드로 바꾸었다. 홑겹 창문에 비닐 붙이기를 시작으로 커튼과 이불 바꾸기, 방마다 온수매트 깔기, 난방텐트 설치까지... 더는 못해먹겠다고, 도무지 이 추위는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욕을 해댔지만 아마 곧 또 적응할 것이다. 동지가 지나면, 밤보다 낮이 더 길어지는 때가 오면 ‘어쨌든 살아냈구나’ 하며 한숨을 돌릴 것이다.


조금 아까 읽은 이슬아 작가의 칼럼에서, 11월의 마지막 주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 날이 있다니 어쩐지 포근한 기분이다. 슈퍼에서 산 퍽퍽한 식빵에 인스턴트 수프를 먹었지만 그런 날이라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풍족한 것 같기도 하다.


풍요는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오늘. 괜찮은 한 주의 시작이다. 더 좋을 것도 나을 것도 없는 날이지만 나름대로 포근하다. 이 마음을 기억하기로 하고 오늘도 한 걸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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