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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Dec 30. 2023

소중한 것은 늘 곁에 있다는 걸


오랜만에 중고 서점에 들렀다. 서가를 둘러보며 눈에 들었지만 읽지 못한 책들을 확인해 본다. 이번 한 해 동안 주로 찾았던 장르의 책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떠올려본다. 어떤 것들은 그때만큼 흥미가 돋지 않는다. 어떤 주제는 그때 왜 그렇게나 몰입하고 열광했었나 싶다.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쩐지 옛일 같다.

대신에 다른 주제들이 눈에 띈다. 새롭게 떠오르려고 하는 욕망들을 간신히 눌러 잠근다. 책방을 둘러보는 일은 마치 그 당시의 내 욕망의 지도 위를 걷는 일만 같다. 한때 사랑했던 것들이 지나고 보니 집착이거나 허세 혹은 욕망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건 조금 우울한 일이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단 낫다. 안갯속에서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는 것보단 어둡지만 선명한 진실이 낫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책을 잘 사지 않게 되었다.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는 일이 출판시장에는 사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한 작가의 글을 읽은 뒤부터일 것이다. 그렇다면 새 책을 사면 되지만 긴축에 들어간 뒤로는 어떤 것에도 지갑을 잘 열게 되지 않았다. 출판시장에 더욱 미안하게 됐다.

그와 더불어 글도 잘 쓰지 않게 됐는데, 이를 두고 지인에게 ‘활자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했다. 읽지 않고 쓰지 않는 생활 속에서 나는 사실 자유를 느꼈다. 욕망으로 들끓던 활화산이 휴지기에 들어간 것처럼 나의 내면은 전보다 조용해졌다. 아니, 오히려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의 내면이 더 잘 들리게 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공허하여 무엇이든 내 안에 집어넣고 싶을 때, 최대한 가벼운 것들을 찾았다. 떠들고 내뱉고 싶은 말들은 되도록 걸러서 가까운 이들과 이야기 나눴다.


마치 채로 거른 것처럼 나는 비로소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찾아냈다. sns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 남이 좋다고 하는 것들이 아니라, 잘한다고 칭찬받는 일이 아니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좋아서 하던 일들이 있었다.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평범하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일들이다.


주변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

그러면 지금 이대로도 괜찮고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는 내 안의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처럼 자랑할만한 성공을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훌륭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토록 평범한 삶일지라도 나에겐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보석 같은 것들이 제법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그 보석 같은 사람들과 소박하게 보냈다. 특별한 케이크도, 고급 제과점의 비싼 빵도, 잔뜩 차린 음식이나 와인도 없었다. 세 식구가 하나씩 요리를 준비해 차려낸 밥상이 그를 대신했다. 그날의 기억은 어디에도 올리기 민망한 흔들리고 비뚤어진 사진 한 컷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어느 해보다 오래도록 추억될 하루다.

나는 이제 진짜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소중한 것은 늘 곁에 있다는 걸 이번에는 진짜로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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