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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May 22. 2024

나의 책상으로


책상 앞에 앉아 공책을 꺼내고 연필을 든 게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한동안 편안하였다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돈은 없고, 무언가 필요하거나 사고 싶고, 그럴수록 나 자신이 미워 괴로운 그런 폭풍이다. 어제, 거의 벼랑 끝인 듯 느껴질 때 멈추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장바구니를 비우고, 결제한 것들을 취소했다. 그리고 남편과 밤산책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우리는 산책을 많이 한다. 그리고 오늘 남편은 나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한 게 아니라 자세히 물어봐 주었다.)

결론은 역시 “쓰지(사지) 말아 보자”. 사도 사도 돈만 사라질 뿐 고통과 고뇌와 번민이 끊이지 않는다면 멈춰 보는 거다. 먼 외출도 자제해 보기로 했다. 밖에 나가다 보면 자꾸만 더 집에 있기 싫고 집과 집안일이 싫고. 순간은 즐겁지만 결국 평화가 깨진다. 물론 최근 ‘알바’를 구해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하여튼 그간의 모든 과정은 다 의미가 있었고, 다시 난 여기로, 내 자리 내 책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편안하고 풍족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아이패드 키보드를 사야 해!’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키보드를 사고, 외출이 잦아지고, 숙제처럼 느껴져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고, 가방을 바꾸고 싶고, 모자를 사고 싶고...


오늘, 모두를 출근 보내고 책상에 앉은 아침. 날은 살짝 흐리고 여전히 새들은 지저귀고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외에는 조용하다. 숨이 다시 느리게 쉬어진다. 심장이 편안하다. 결국 여기로. 돌아왔다. 나의 책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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