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환멸의 시기를 지나자

by 수달씨


고층건물과 네모난 창문이 빼곡한 아파트 단지를 보면 깊은 혐오감을 느낀다. 누군가에겐 절박한 삶터와 일터일 것인데, 세상은 내가 뭐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 방향으로 흘러갈 텐데.

이를테면 하늘을 빼앗기는 느낌이다. 그나마 누구에게나 공평했던 하늘마저 이렇게 가져가나.


연예인들의 불법적인 사생활 의혹들로 사방이 시끄럽다. 평소 이미지가 좋던 사람들이라 더욱 충격이 크다. TV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한동안 예능프로그램은 못 볼 것 같다. (대신에 디즈니플러스를 정기결제했다.) *


요즘 이동거리가 많다. 2주 전에는 대중교통으로 강화에 다녀왔다. 경기도에서 꼬박 4시간 걸려 도착했는데, 이 정도면 부산도 가겠다며 웃었다. 며칠 전에는 아이와 서대문형무소와 청계천을, 오늘은 전철로 일산과 혜화동. 차가 있으면 아무 일도 아니란 것을 안다. 이동에 허비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차라리 운전을 배우는 것이 낫겠다. (면허는 20년째 장롱에 있다.) 하지만 내게 운전은 싫어하는 행위들의 총체이다. 죽었다 깨나도 안 되는 일 하나쯤은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책이 읽히지 않아서 대충 얇고 쉬워 보이는 책들을 들고 나왔다. 쉬 읽히는 책은 없다. 활자를 읽기는 하나 마음이 받아들이질 않는다. 묘하게 거부감도 든다. 그래도 끝까지는 읽었다.


날이 흐리고 온몸이 으슬으슬하다. 감기가 오려나보다. 흐리고 검은 마음들이 하나 둘 모여 습하고 무거운 공기를 만든다. 검은 겨울이다. 지퍼를 꼭꼭 여미고 점퍼 안에 숨는다. 내년이 오길 기다린다. 분명 더 파랗고 맑을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있기.



* 그래도 (요즘 시기에) 역시 제일 싫은 건 쿠팡과 내란범들이다. 전쟁도, 폭력도, 기후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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