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가 너무 싫어!

오늘의 밥값 27 / 설거지에 대한 고찰, 아니면 투정

by 수달씨


설거지가 너무너무 싫다!

좋은 음악을 들어도, 영화를 틀어놓아도, 향기로운 아로마 오일을 피워봐도, 집중해서 정성껏 해봐도 그때뿐. 다음번 설거지는 여전히 하기가 싫다. 도무지 좋아지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된다. 땀을 흘리면 씻는 것처럼, 바닥이 지저분하면 청소기를 돌리거나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선택되지가 않는다. 그냥 싫다.

왜 싫을까.

일단 오래 서있는 게 싫다. 붙박이처럼 꼼짝없이. 그리고 그릇 양이 많던 적던 오래 걸린다. 그릇만 닦는 게 아니라 가스레인지와 싱크대도 닦아야 하고 먼저 있던 건조대의 그릇들도 정리해 넣어야 하고 행주도 빨아 널어야 하고. 커피머신 닦기나 냉장고 정리 반찬통 비우기처럼 매번은 아니어도 따라오는 노동이 많고 냄비나 프라이팬이나 밥솥은 무겁고 커서 번거롭기까지 하다. 시골집이라 물도 속 시원하게 나오지 않으니 더더욱 번거롭다.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아니면 먹는 것에 흥미가 적다는 것에. 나도 알아주는 빵순이일 만큼 디저트를 좋아하고 가끔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어 하지만 대체로는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알약이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부류의 사람들과 가까우니까. 먹는 것이 싫다기보다는 그에 수반되는 노동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가끔 즐거운 요리를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아주 가끔이고 최대한 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존에 있어 먹는 행위는 기본 중의 기본일 텐데. 도무지 기본이 안되어있는 인간인 걸까.

그렇다고 집안일 자체를 싫어하느냐면 그건 아니다. 청소와 빨래는 힘들어도 보람 있고 때로는 즐겁기까지 하다. (물론 육아 초기에 빨래의 고통에 대해 호소한 적도 있긴 하지만 그건 '빨래는 세탁기가 해준다'는 오해에 대한 항변이다. 세 사람치 빨래를 접어 이 방 저 방 갖다 놓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노동이 적지 않게 들어가는 것이다. 가끔 설거지에 대한 나의 투정에, 식기세척기를 들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건 유효하지 않다. 식기세척기 또한 세탁기처럼 일부 영역만을 대행해줄 뿐이므로.)

그에 반에 설거지는 그야말로 무한 루프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인간은 먹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래서 나는 동네 분식집이나 편의점 도시락, 빵과 커피 정도로 웬만하면 해결하고 싶다. 조리하지 않고 먹는 과일이나 유제품도 괜찮고. 하지만 혼자 사는 삶이 아니다 보니 가족들의 식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잖아.

설거지를 주제로 이렇게 자세히 썰을 푸는 이유는 이렇게 하다 보면 무언가 답이나 작은 실마리라도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실패. 노답이다. 싱크대에 잔뜩 쌓여있는 어제저녁부터 오늘 점심까지의 설거지감들을 피하거나 받아들일 방법이 없다. 아아.

싫다고 며칠씩 쌓아둘 만큼의 배짱도 없고, 장마철 꿉꿉한 악취를 견뎌낼 만큼 둔감하지도 못하니. 결국 오늘의 나든, 내일의 나든 누군가 하겠지. 돈 주고 사람을 쓰지 않는 이상. (남편은 요즘 잦은 지방 출장으로 당분간 열외 중이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을 다해 투정 부리고 나면 어쩐지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그거라도 노려본다. 마지막 희망이다.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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