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밥값 36 / 안개 뒤에는 반드시 파란 하늘이 있어
이 가을이 되고, 나는 내가 가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니면 내가 달라졌던가.
아침이 되면, 일교차가 큰 요즘 같은 때에 우리 동네는 팔당댐에서부터 시작된 부연 안개로 자욱하다. 마당에 나와 오늘도 흐린 건가 하고 섭섭해하던 찰나,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휴지에 물 적시듯 스민다. 나는 이제 이 안개 또는 구름 그 위에 파란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안다. 몇 분 뒤, 몇 시간 뒤, 아니면 며칠이 걸리더라도 거기에는 하늘이 있어 반드시 얼굴을 보여주리라.
가을은 내게 상징적인 계절이었다. 말하자면 우울과 열등감과 자책감의 상징. 9월인 내 생일이 지났고, 마지막 희망 같던 추석도 지났고 이룬 것도 없이 겨울을 맞아야 하는 지옥 같은 시간. 세상이 온 잎을 떨구고 흰 눈과 얼음으로 잠재워질 때야 비로소 나도 겨우 내려놓고 어쩔 수 없이 한 살 늙어감(혹은 죽어감)을 받아들인다.
그게 내 가을이고 겨울이었다.
최근 한 달 가까이 밀가루를 끊고 소비를 끊어보았다. 그러면서 나를 가로막고 있던 것들이 선명이 보이게 됐다. 욕구와 욕망을 걷어낸 자리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진짜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작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세상이 보였다. 땀 흘려 운동하고 걷는 내 몸이 생각보다 더 단단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 욕구와 욕망을 채워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진정한 휴식과 행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았다. 그렇게 맞이한 가을은 정말 아름답다. 나는 매일 놀란다. 하루하루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도, 가을걷이와 겨울 채비로 바쁜 시골의 일꾼들도 모두 아름답다. 냉장고를 뒤져 소박하게 차려먹는 끼니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힘들어하는 나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 내 상태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나무같이 단단한 사람들이 옆에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며칠 전, 서랍을 정리하다 있는지도 몰랐던 열아홉의 일기를 발견했다. 내가 놀란 건, 너무 귀여운 글씨체로 적힌 너무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들. 열등감과 자책감과 질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무 해가 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거대한 장수거북이처럼 딱딱한 등껍질이 되어 나를 짓눌러왔다. 나는 이제 그 등껍질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더 커 보일 필요도, 멋있어 보일 필요도 없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할 필요도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이 나로 살려고 한다.
너는 지금 이대로 충분히 소중하고 대단해.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넌 이미 잘하고 있어. 틀려도 괜찮아. 잘 못해도 괜찮아. 당당하고 씩씩하게,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아무도 널 괴롭히고 훼손할 수 없어. 내가 나의 아이에게 밤마다 이불속에서 해주는 말들, 십 대의 내가 나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들을 지금의 나에게 해준다. 나는 매일이고 나에게 속삭인다. 그리고 안아준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가장이다.
자기 자신의 아빠이고 엄마이다.*
우리는 모두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또한 그런 만큼 위로와 다정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나에게 해주고, 또 그만큼 내 아이에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참말로 잘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거면 됐다.
2022/10/20
* 여기서 사용한 가장, 아빠, 엄마 라는 단어는 성별고정관념적인 이미지를 활용하지 않고, '생계'와 '돌봄' 행위를 하는 '양육자'의 이미지로 사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