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율의 서재 Ep.02(1/3)

발신자 미상

by 수담
발신자미상(12화).jpg 발신자 미상 1화

**새벽 세 시, 나는 죽은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부재중 전화였다. 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하영은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떠 있는 알림 하나. 새벽 2시 37분, 부재중 전화 1통. 발신자 이름은 '윤하영'이었다.


하영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자기 자신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뭐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해 통화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분명 '윤하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전화번호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낯선 번호였다. 누군가 자신과 같은 이름을 연락처에 저장해두고 실수로 전화를 건 걸까?


새벽 2시 37분, 그때 자신은 구급차 안에 있었다. 교통사고 환자를 싣고 병원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사이렌 소리와 무전기 잡음, 동료의 낮은 목소리.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휴대폰을 탁자에 내려놓고 냉장고로 향했다. 소주 한 병을 꺼내 잔에 따랐다. 투명한 액체가 잔을 채웠다. 한 모금 마시자 차가운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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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영, 마흔여섯 살. 119 구급대원 경력 15 년차.


그녀의 하루는 언제나 불규칙했다. 야간 근무가 많았고, 주말도 없었다. 출동 벨이 울리면 언제든 달려가야 했다. 사람의 생명을 싣고 병원으로 향하는 일. 15 년간 그 일을 해왔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영의 아파트는 작았다. 원룸에 가까운 투룸이었다. 혼자 살기엔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왔다. 동료들과는 원만했다. 농담도 주고받고, 식사도 함께했다. 하지만 퇴근 후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없었다. 연애도 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가끔 물었다. "선배님, 왜 혼자 사세요? 괜찮은 사람 소개해드릴까요?" 하영은 그럴 때마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이게 편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혼자가 편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다. 다시 잃을까봐. 다시 아플까봐.


하영은 소주잔을 기울였다. 두 번째 잔이었다.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왔다. 시선이 다시 휴대폰으로 향했다.


'윤하영'이라는 발신자 이름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까. 단순한 실수 전화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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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은 세 번째 잔을 따르며 문득 그때를 떠올렸다.


2003년 가을. 서울의 어느 대학병원 응급실. 그때 하영은 서른 한 살이었고, 응급실 간호사였다. 늦은 밤마다 밀려드는 환자들. 피와 소독약 냄새, 울음소리와 비명. 하영은 그 혼란 속에서도 침착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손은 정확했고, 판단은 빨랐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강민수. 구급대원이었다.


민수는 자주 응급실에 환자를 실어 날랐다. 스물아홉 살의 그는 언제나 밝았다. 힘든 상황에서도 농담을 잊지 않았고, 환자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하영은 그런 민수를 처음엔 가볍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인데, 라고.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어느 날 밤, 특히 힘든 케이스가 있었다. 교통사고로 실려 온 젊은 여성이었다. 하영과 민수는 필사적으로 애썼지만, 환자는 결국 숨을 거뒀다. 하영은 그날 밤 처음으로 무너질 뻔했다. 탈의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하영 선생님."


민수였다. 그는 병원 옥상으로 하영을 데려갔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민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지만 불을 붙이지 않았다.


"하영 선생님, 이 일 하면서 힘들 때 어떻게 버텨요?"


하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민수가 말을 이었다.


"저는요, 그냥 다음 사람을 생각해요. 우리가 구하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구한 사람도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견딜 만해지더라고요."


그날 밤, 하영의 마음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차가운 콘크리트 같았던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민수는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밝은 척할 뿐이었다. 환자들을 위해서, 동료들을 위해서.


그 후로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야간 근무가 끝나면 함께 새벽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한강을 걸었다. 민수는 커플링을 선물했다. "우리, 그냥 이렇게 계속 함께 있으면 안 될까요?"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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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은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회상이 끊겼다.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작은 아파트의 거실. 조용한 새벽. LED 조명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윤하영'이라는 이름을 오래 바라봤다. 전화를 걸어볼까? 누구일까? 왜 내 이름을 저장했을까?


손이 떨렸다.


왜 떨릴까. 단순한 실수 전화일 뿐인데.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이 올라왔다. 설명할 수 없는 예감. 뭔가 알게 될 것만 같은.


하영은 15년 전을 떠올렸다. 민수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그날. 벨이 울렸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됐다.


눈을 감았다. 15년 전 그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2003년 10월 15일. 대형 화재 사고. 민수가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 메시지. '큰 사고야. 바쁠 것 같아. 나중에 전화할게.'


하지만 나중은 오지 않았다.


하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휴대폰 화면을 다시 봤다. '윤하영'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떠 있었다.


그날, 나는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받지 못했다.


영원히.


[다음 화에 계속]




*이 작품은 OOO의 'OOOO'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픽션입니다.


『선율의 서재 』각 에피소드는 3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화 - 10.2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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