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붕괴

by 수담

경보가 울렸다.


레미니언스 62층 전체가 붉은 불빛으로 물들었다. 복도를 달리는 직원들. 엘리베이터 앞에 몰린 사람들.


패닉이었다.


한비와 도윤은 서하를 응급 침대에 태우고 지하 3층으로 향했다. 시스템 관리실. 모든 것을 통제하는 중추.


문이 열렸다. 수십 개의 홀로그램 화면이 공중에 떠 있었다. 모두 빨간색이었다.


"서하 씨의 감정이 서버 전체를 잠식하고 있어요!"


한비가 콘솔 앞으로 달려갔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았다.


도윤은 화면을 봤다. 네트워크 맵 전체를 덮어가는 빨간 파동. 숫자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47%... 58%... 69%...


"이게..."


"사랑 감정 코드가 디지털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어요." 한비의 목소리가 떨렸다. "통제 불능입니다."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됩니까?"


"레미니언스에 저장된 수만 건의 기억이 동시에 폭발합니다." 한비가 도윤을 봤다. "그리고 서하 씨는..."


"죽는다는 뜻이군요."


화면에 경고 메시지가 떴다.


[CRITICAL: 시스템 붕괴 임박]


경보음이 더 날카로워졌다.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


"제가 직접 링크하겠습니다."


도윤의 목소리가 경보음을 뚫고 나왔다.


한비가 돌아봤다.


"미쳤어요? 당신도 죽을 수 있어요!"


"그녀의 감정을 제가 대신 감당하겠습니다."


"3년 전에도 실패했잖아요." 한비가 소리쳤다. "이번엔 당신까지 잃을 수 있어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침묵.


한비는 도윤을 봤다. 그의 눈에 결의가 가득했다.


"...당신의 봉인을 풀어야 해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녀를 사랑했던 모든 감정이 돌아옵니다. 3년치가 한꺼번에."


"괜찮습니다."


한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도윤은 침대 위의 서하를 봤다.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그녀. 기계에 연결된 채로.


"...사랑하니까요."


처음이었다. 한도윤이 감정을 표현한 것은.


한비는 고개를 돌렸다.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준비됐어요. 하지만... 제가 막을 수도 없어요. 당신이 죽어도."


"알고 있습니다." 도윤이 특수 의자에 앉았다. 서하가 앉았던 그 자리. "시작하십시오."


'두 번 다 내 잘못이었어.'


'이번엔 내가 대가를 치를 차례야.'


'서하야, 이번엔 내가 너를 구할게.'


......................


헤드셋이 도윤의 머리에 씌워졌다. 차가운 금속. 관자놀이를 누르는 압박.


"봉인 해제를 시작합니다."


한비의 목소리. 그리고 AI의 기계음.


"감정 봉인 해제 프로토콜 시작. 대상: 한도윤. 봉인 감정: 사랑."


화면에 검은 코드가 나타났다. 봉인. 3년간 도윤을 지켜온 감옥.


코드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빨간색이 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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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찢어진다.

빛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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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석양. 서하의 얼굴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키스.

따뜻한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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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 비 오는 날.

"편집사님은 저를 실험 대상으로만 보는 거죠!"

서하가 울고 있다.

"아니야, 서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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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니언스 앞. 폭우.

도윤이 서하를 껴안는다. 젖은 옷. 차가운 빗물. 하지만 서하는 따뜻하다.

"미안해. 네가 소중해. 너무 소중해서 무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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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복도. 차가운 형광등.

서하가 떠나려 한다. 등을 돌린다.

도윤이 손을 뻗는다.

"가지 마... 제발... 난 네가 없으면..."

하지만 서하는 멀어진다. 점점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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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돌아왔다.


도윤의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막을 수 없었다. 3년간 억눌렀던 모든 것이 터져 나왔다.


"서하야..."


목소리가 깨졌다.


"미안해... 사랑해..."


오열.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


한비가 화면을 봤다.


"감정 복원 완료. 도윤 씨 감정 수치... 최대치를 넘었어요."


......................


서하가 도윤 옆으로 옮겨졌다. 두 침대가 나란히 놓였다. 두 사람 모두 헤드셋을 썼다.


"직접 링크를 시작합니다." 한비가 말했다. "서하 씨의 감정이 당신에게로 이동할 거예요."


도윤은 고개를 돌려 서하를 봤다. 창백한 얼굴. 차가운 손.


"네 아픔을 내가 가져갈게."


"직접 링크 초기화." AI의 음성. "감정 코드 전송 시작."


화면에 두 사람의 뇌파가 나타났다. 서하는 빨강. 도윤은 파랑.


빨간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하에게서 도윤에게로.


천천히. 점점 빨라진다.


도윤의 몸이 떨렸다.


"으..."


뇌파가 급상승했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감정 공유... 45%..."


몸이 경련했다. 전기가 온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67%..."


그녀의 사랑이 쏟아져 들어왔다. 3년치 그리움. 아픔. 절망. 희망. 모든 것.


"으윽... 이렇게... 나를..."


"89%..."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95%... 98%..."


......................


"99%..."


한비가 숨을 죽였다.


"감정 공유 100%."


도윤의 경련이 멈췄다.


서하의 뇌파가 안정됐다.


성공?


하지만.


새로운 경고가 떴다.


[WARNING: 예상치 못한 현상 감지]


한비의 눈이 커졌다.


[두 의식 패턴 융합 중]

[개체 구분 불가능]


"안 돼..."


화면에 두 사람의 뇌파가 나타났다. 빨강과 파랑. 두 파동이 점점 가까워졌다.


겹쳤다.


보라색이 되었다.


하나가 되어버렸다.


"두 사람 다... 사라질 수 있어요."


한비의 손이 비상 중단 버튼으로 향했다. 떨렸다.


누를 수 없었다.


지금 끊으면 둘 다 죽는다. 계속하면... 하나가 된다. 영원히.


화면의 숫자가 올라갔다.


융합률.


12%... 27%... 41%...


"한 편집사... 서하 씨... 부디..."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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