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거울 속 낯선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
'이게 정말 나인가?'
박종수는 아침마다 세면대 앞에서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일흔둘. 숫자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세월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45년 동안 기계 부품을 만들며 살아온 손에는 여전히 기름때가 배어 있고, 구부정해진 어깨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은퇴 후 3년. 처음 1년은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만끽했다. 늦잠도 자보고, 평일 오후 목욕탕도 가보고, 동네 할아버지들과 장기도 두어보았다. 하지만 2년째부터는 뭔가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아들 민수와는 언제부터 대화가 줄어들었을까.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따라다니던 아이였는데, 언제부턴가 서로 할 말이 없어졌다. 명절 때 만나도 안부 인사 정도가 전부였다. 손자 민준이는 할아버지보다 스마트폰이 더 재미있어 보였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아내를 잃고 혼자가 된 지 5년.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가장 큰 변화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본 작은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평생교육원 인문학 강좌 수강생 모집"
인문학. 생소한 단어였다. 45년 동안 기계와 부품만 다루며 살아온 사람에게 인문학이라니. 하지만 뭔가 이끌리는 것이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학문'이라는 설명을 보니,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목요일 오후 2시. 평생교육원 3층 강의실.
박종수는 처음으로 학생이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72세에 말이다.
그는 아직 몰랐다. 그 강의실에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일과 육아 사이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젊은 엄마, 부당한 현실과 가족 부양 사이에서 고민하는 직장인, 실패한 결혼의 상처를 안고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는 여인,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베테랑 강사까지.
나이도, 배경도, 고민도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 바로 '진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시작된 질문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용기로, 에픽테토스의 지혜로, 카뮈의 반항으로 이어지며,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철학이 되어갈 것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목요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되어갈 것이라는 사실도.
9월의 늦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듯, 사람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박종수는 평생교육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72세에 시작하는 첫 질문.
그 질문이 어디로 이어질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이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목요일 오후, 삶을 묻는 시간이 곧 시작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