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1시 50분. 김민우는 평생교육원 3층 계단을 오르며 가방 속 강의 계획서를 만졌다. 25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새 학기 첫날은 여전히 긴장된다. 아니, 요즘 들어 더 긴장되는 것 같다.
'과연 내가 이들에게 뭘 줄 수 있을까.'
복도를 걸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철학과 석사를 받고 시작한 이 일이 어느새 25년이다. 처음엔 지식을 나누는 기쁨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자신이 그저 교과서를 읽어주는 기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도 변했다. 예전엔 질문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한다.
강의실 301호 문 앞에 서서 시계를 봤다. 2시 정각. 문을 열기 전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작은 소음들이 들려온다. 의자 끄는 소리, 가방 지퍼 소리, 누군가의 기침 소리.
문을 열자 벌써 일곱 명이 와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왔다. 보통 첫날에는 서너 명 정도만 오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맨 앞자리의 할아버지였다. 70대로 보이는 그는 A4 공책을 펼쳐놓고 색깔 볼펜 네 자루를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빨강, 파랑, 검정, 초록. 마치 중요한 회의라도 할 것처럼 준비가 철저했다. 벌써 뭔가를 적고 있는데, '인문학 입문'이라고 또박또박 쓴 글씨가 보였다. 등은 곧게 펴고 앉아 있었지만 약간 긴장한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창가 쪽 세 번째 줄에는 30대 여성이 앉아 있었다. 깔끔한 티셔츠에 카디건을 걸친 모습이 단정했지만 어딘지 피곤해 보였다. 휴대폰을 자주 확인했는데,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는 모양이었다. 가방 옆에는 뽀로로 그림이 그려진 아이용 물병이 놓여 있었다. 가끔 한숨을 쉬면서 시계를 보는 걸 보니 시간에 쫓기는 듯했다.
네 번째 줄 가운데쯤에는 정장 차림의 40대 남성이 앉아 있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놓았지만 여전히 직장인의 긴장감이 어깨 라인에 남아 있었다. 계속 시계를 보더니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회의 빠진다고 연락드립니다'라는 문자인 것 같았다. 회사에서 몰래 빠져나온 게 분명했다.
그 옆에는 편한 옷차림의 50대 여성이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슬쩍슬쩍 살피고 있었는데, 뭔가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망설이고 있었다. 손에 든 수첩에는 '평생교육원 인문학 수업'이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물음표가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맨 뒤쪽에서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노트북을 열어놓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화면을 보니 자기소개서 같았다. 이따금 얼굴을 찌푸리면서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된 줄도 모르는 듯 집중하고 있었다.
문 근처 맨 뒤에는 40대 여성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무것도 꺼내지 않은 채 그냥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앉아만 있었다. 가방도 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무릎에 끼고 있었는데,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김민우의 인사에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서 90도로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고개만 살짝 끄덕이거나 작게 "안녕하세요" 하고 대답했다. 대학생은 그제야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었다.
"저는... 김민우고요. 이번에 인문학 수업을 맡게 됐습니다."
25년 경력이지만 여전히 첫인사는 어색하다. 이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하고 왔을까. 뭔가 거창한 깨달음을 얻기 원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시간 때우기용일까.
칠판 앞으로 가서 분필을 집었다. 스마트보드도 있지만 습관적으로 분필을 선택한다. 칠판에 'humanitas'라고 적었다가 지우고 다시 '인문학이란?'이라고 적었다.
"인문학이 뭔지 아시는 분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손을 들까 말까 하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나머지는 조용했다.
"음... 어려운 말로 하면 라틴어로 휴마니타스, humanitas에서 나온 말인데..." 김민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또 딱딱해진다. "그냥 쉽게 말하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창가 여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추상적인 설명이었나.
"음, 예를 들면...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해보신 적 있으시죠? 그런 게 다 인문학적 사고예요."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정장 남자가 공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플라톤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 혹시 '동굴의 비유'라는 거 들어본 분 있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제가... 한번 설명해 볼게요."
김민우는 칠판에 동굴 모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실력이 별로라서 뭔지 잘 안 보였지만 어쨌든 동굴처럼 생긴 것을 그렸다.
"옛날 그리스에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있었어요. 이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동굴이 있는데, 사람들이 사슬에 묶여서 앉아 있어요. 이렇게."
동굴 안에 막대기 같은 사람들을 그렸다.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계속 이렇게 앉아 있었어요. 뒤를 돌아볼 수도 없고, 앞만 보고 살았죠. 그런데 뒤쪽에서 불이 켜져 있어서 벽에 그림자가 보이는 거예요."
뒤쪽에 불 모양을 그리고 벽에 그림자 같은 것들을 그렸다.
"이 사람들은 그림자만 보고 살았어요. 그림자가 진짜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림자 토끼를 보면 '아, 토끼다' 하고, 그림자 나무를 보면 '저게 나무구나' 하고."
50대 여성이 "아..."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사슬에서 풀려났어요. 우연히요. 그래서 뒤를 돌아봤더니 불이 있고, 진짜 토끼와 나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요?" 정장 남자가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더 나가봤어요. 동굴 밖으로. 그랬더니 진짜 세상이 있는 거예요. 햇빛도 있고, 진짜 나무들도 있고."
김민우는 동굴 밖에 해와 나무들을 그렸다. 초등학생 그림 같았다.
"그 사람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지금까지 본 건 다 가짜였구나. 그림자였구나."
대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그 사람이 다시 동굴로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요. '야, 밖에 진짜 세상이 있어. 우리가 보는 건 그림자야.'"
"그럼 사람들이 좋아하겠네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럴 것 같죠? 근데 아니에요. 사람들이 안 믿어요. '쟤가 미쳤나' 하고. 심지어 화를 내요. '우리 조용히 살고 있는데 왜 헛소리하냐' 이러면서."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왜 그럴까요?"
창가 여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그런 소리 들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우니까요?"
"맞아요.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다 가짜라고 하면 믿기 어렵죠."
문 근처 여성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믿었던 게 다 거짓말이라면."
김민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처음 말하는 건데 목소리에 뭔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네, 무서울 거예요. 그래서 플라톤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 사람을 죽이려고까지 할 거라고 했어요."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50대 여성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세요. 내가 평생 믿고 살아온 걸 누가 와서 '그거 다 가짜야'라고 하면 어떨까요?"
사람들이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에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동굴 안에 있는 걸까요, 밖에 있는 걸까요?"
침묵이 흘렀다. 할아버지가 공책에 뭔가를 적었다.
정장 남자가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김민우가 웃었다. "만약 우리가 지금 동굴 안에 있다면, 우리는 그걸 모르고 있는 거잖아요?"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요?" 대학생이 물었다.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의심해 보는 거죠. '혹시 내가 지금 보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창가 여성이 휴대폰을 또 확인했다. 아이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올까 봐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잠깐, 혹시 뭔가 급한 일 있으세요?" 김민우가 물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정수연이 당황했다.
"괜찮아요. 아이 있으면 신경 쓰이죠."
"네... 일곱 살인데 어린이집에서 일찍 끝나서."
"몇 시에 데리러 가세요?"
"다섯 시까지는 가야 해요."
"그럼 시간 충분하네요. 우리 네 시에 끝나거든요."
정수연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서로 좀 알아볼까요? 이름하고... 음, 왜 여기 오셨는지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할아버지가 먼저 나섰다.
"박종수입니다."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나이는... 일흔둘이고요."
다른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칠십 대에 인문학 수업을 듣는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은퇴하고 나니까 할 일이 없어서요. 45년 동안 기계 부품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만두고 보니 뭔가... 허전해서."
박종수는 잠시 멈췄다가 계속했다.
"그냥 뭔가 배우고 싶었어요. 머리가 굳어지기 전에."
"어떤 걸 배우고 싶으셨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 기계만 봤으니까 이제 사람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 그런 거 있잖아요. 왜 사는가 그런 것들."
박종수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플라톤 이야기 들으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음..." 박종수는 잠시 생각했다. "저도 그 동굴 속 사람 같았던 것 같아요. 기계 부품만 보고 살았으니까. 그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창가 여성 차례였다.
"정수연이에요." 그녀는 가방 속에서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았다. 아이 키우는 엄마의 습관인 듯했다. "아이 키우고 있고... 시간이 좀 있어서 와봤어요."
"아이가 몇 살이라고 하셨죠?"
"일곱 살이에요.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할 게 없어서... 예전에는 일을 했거든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어요. 결혼하고 그만뒀는데..." 정수연은 말을 멈췄다.
"지금은 다시 일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남편은 반대하고... 아이도 어리고. 그런데 집에만 있으니까 답답해서요."
정수연의 목소리에 뭔가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동굴 이야기는 어떻게 들으셨어요?"
"음..." 정수연은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저도 새로운 동굴에 들어간 건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것만 보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요."
김민우는 예상보다 깊은 대답에 놀랐다.
정장 남자가 다음이었다.
"조현우입니다. 회사 다니고..." 그는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오늘 회의 있었는데 빠지고 왔어요."
"회의 빼먹고 오셨어요?" 50대 여성이 놀란 듯 물었다.
"네... 그냥 호기심에."
"어떤 호기심이요?"
조현우는 잠시 망설였다.
"회사 일이 좀... 스트레스여서요. 매일 숫자만 보고, 실적만 생각하고. 이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인가 싶어서 다른 생각을 해보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세요?"
"경영관리 쪽이에요. 매출 분석하고 보고서 쓰고... 그런 일들. 근데 요즘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조현우는 말을 멈췄다. 더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50대 여성이 말했다.
"저는 강미숙이에요. 애들이 다 커서 독립했어요."
"몇 명 키우셨어요?"
"둘이요. 딸하고 아들. 30년 동안 애들 뒷바라지만 했는데, 다 떠나고 나니까..."
강미숙은 한숨을 쉬었다.
"할 일이 없어요. 남편은 직장 다니고, 저는 집에 혼자 있으니까 답답해서. 그래서 뭔가 해보자 싶어서 왔어요."
"어떤 걸 해보고 싶으세요?"
"글쎄요...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애들 키울 때는 바빠서 생각할 시간도 없었는데, 이제 시간은 많은데 뭘 해야 할지."
대학생이 말했다.
"김지훈입니다. 대학교 4학년이고..." 그는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봤다. "취업 준비하는데 뭔가 답답해서 왔어요."
"뭐가 답답한가요?"
"모든 게요. 왜 취업해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남들 다 하니까 저도 해야 하는 건지... 그런데 정작 제가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어요."
김지훈은 자기소개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도 그래요. '지원동기를 써라'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돈 벌려고 하는 건데, 그렇게 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거짓말을 써야 하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귀하의 회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런 거 다 거짓말이에요. 사실은 그냥 취업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
솔직한 대답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문 근처 여성이 조용히 말했다.
"이순영이에요." 목소리가 작았다.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뭔가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냥... 새로 시작하고 싶어서 왔어요."
"새로 시작한다는 게?"
이순영은 한참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작년에... 이혼했어요."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았는데, 이제 혼자가 되니까... 진짜 나는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이순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 뭔가 새로 배워보고 싶었어요. 저에 대해서."
김민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25년 만에 처음으로 뭔가를 깨닫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강의들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철학은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이 사람들의 삶 속에 있었다.
각자가 자신만의 동굴을 가지고 있었다. 박종수의 기계 부품 세계, 정수연의 완벽한 엄마 역할, 조현우의 회사 생활, 강미숙의 자녀 중심 삶, 김지훈의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 공식, 이순영의 아내라는 정체성.
"여러분 이야기를 들으니까... 제가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진심이었다.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혼자서는 나오기 어렵다는 거예요. 진실을 혼자 견디기 어려우니까. 그래서 함께 나와야 하는 거죠."
박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가 여기서 하는 게 그런 건가요? 함께 동굴에서 나오는?"
"그럴 수도 있겠죠. 적어도 그런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거겠고요."
시계를 보니 벌써 3시 40분이 넘었다. 첫 시간치고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시간이 다 됐네요. 그런데 혹시 질문 있으신 분?"
정수연이 손을 들었다.
"다음 시간에는 뭘 하나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의 '행복론'을 해보려고 해요. 혹시 시간 되시는 분들은 관련 책을 읽어오시면 좋긴 한데... 굳이 안 읽어와도 돼요."
"어떤 책이요?"
"『니코마코스 윤리학』인데 좀 어려워요. 그냥 '아리스토텔레스 행복'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글들만 읽어봐도 충분해요."
조현우가 말했다.
"행복이라... 그것도 어려운 주제네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이 아까 말씀하신 고민들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박종수는 공책을 정리하면서 뭔가 아쉬워했다. 색깔 펜들을 하나씩 뚜껑을 닫으며 정리하는 모습이 정성스러웠다.
정수연은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시계를 보더니 "아이 데리러 가야 해서"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현우는 넥타이를 다시 매며 현실로 돌아가는 표정이었다. "회사 가서 뭐라고 해야 하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강미숙은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워했다. 처음으로 이런 대화를 나눠본 것 같았다.
김지훈은 노트북을 닫으면서 "다음 주에도 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순영은 가방을 메면서도 망설였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결국 조용히 나갔다.
"다음 주 같은 시간에 봐요."
사람들이 하나씩 나가고 김민우는 혼자 남았다. 칠판의 동굴 그림을 바라봤다.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서툰 그림이지만, 오늘 이 그림을 통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25년 동안 해온 강의 중에 이렇게 생생한 적이 있었나. 교과서 속 철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철학을.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삶의 문제들을.
창밖을 보니 여전히 뜨거운 9월 오후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늦여름의 무더위가 계속되는 목요일 오후. 이 시간이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궁금했다.
김민우는 칠판을 지우고 가방을 메었다. 복도로 나서며 생각했다.
다음 주에는 몇 명이나 올까. 오늘의 어색함을 견디고 다시 올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확신하는 게 하나 있었다. 오늘 뭔가가 시작되었다는 것. 단순히 지식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그런 것이.
박종수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여기서 하는 게 그런 건가요? 함께 동굴에서 나오는?'
그럴지도 모른다. 72세에 시작하는 첫 질문이, 이들 모두의 첫 질문이 될 수도.
복도의 형광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목요일 오후가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