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를 읽다가 한 구절에서 멈춰 섰습니다.
"완생은 안전하지만 리턴이 작고, 미생은 불완전하지만 더 큰 가능성을 품고 있다."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 미생과 완생. 참 묘한 단어들입니다. 완전히 살아있지 않아서 위험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미생'. 반대로 두 집을 확보해 더 이상 죽지 않지만, 그만큼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 어려운 '완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때 드라마 '미생'이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온 국민이 열광했던 그 드라마. 주인공 장그래가 정규직도 아닌 인턴사원으로 회사에서 버티며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죠. 그도 바둑판 위의 미생처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였지만, 바로 그 때문에 더 치열하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바둑에서 완생은 두 집을 확보해 더 이상 죽지 않는 안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상대가 아무리 공격해도 끄떡없죠. 하지만 그만큼 안주하게 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미 살아있으니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거든요.
반면 미생은 아직 완전히 살아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위험하고 불안정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어떻게 수를 두느냐에 따라 큰 집을 만들 수도 있고,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고, 때로는 전체 판세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요즘 들어 '미생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완생의 삶과 불확실한 미생의 삶, 과연 어느 쪽이 더 의미 있는 걸까요?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에서 읽었던 한 판의 대국이 떠오르네요. 위험한 미생 상태의 돌들이 결국 살아남아 판세를 뒤바꾼 명국이었죠. 가장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순간은 미생들이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며 경쟁할 때예요. 어느 쪽이 살고 어느 쪽이 죽을지 알 수 없는 그 긴장감 속에서 진짜 묘수가 나오고, 예술적인 수가 탄생합니다.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아요. 모든 것이 확정되고 안전해진 순간, 우리는 성장을 멈추게 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최소한의 안정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안정에 안주해서 도전을 포기한다면, 그건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될 수도 있어요.
미생의 삶은 분명 흔들립니다.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기도 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짜 성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20대, 30대야말로 미생의 삶을 살기에 가장 좋은 시기 아닐까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는 시기니까요.
안전한 완생으로 안주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반전들이 우리 인생에도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 뜻밖의 기회, 위기가 가져다준 새로운 가능성...
어젯밤, 책을 다시 펼쳐 들며 거울 속 제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여전히 미생의 삶을 살고 있는 50대 중년의 남자.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힘들지만, 그래도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수 있다는 게 감사했습니다.
완생의 안정감도 좋지만, 미생의 역동성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무한함 속에서 흔들리고 편차가 생기더라도, 그 안에서 찾는 작은 성장과 창조의 순간들이야말로 삶의 진짜 재미 아닐까요?
오늘도 저는 미생으로 살아갑니다.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위험하지만 가능성 넘치는 이 삶을 끝까지 사랑하면서 말이죠.